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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천행의 長詩로 그려낸 '지옥도'1945년 히로시마 투하 핵폭탄
제작 과정·파괴 실체 고발하며
희생된 재일조선인들 삶 추적
신홍균 기자  |  topgunhk@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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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7.22  16:0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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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틀보이 (고형렬·최측의농간)

[충청일보 신홍균기자] 고형렬 시인이 핵폭탄의 비극을 치열하게 형상화한 장시 '리틀보이'가 출판사 최측의농간 시집선을 통해 새로운 모습으로 복원된다.

8000행에 이르는 분량 만으로도 이미 독자들을 압도하는 이 시는 1945년 8월 6일 일본 히로시마 상공에 투하된 핵폭탄 '리틀보이(Little Boy)'가 불러온 엄청난 비극의 참상을 증언·고발하면서 일제 하 조선인들이 겪었던 끔찍한 수난을 서사시 형식으로 복원해낸 한 편의 장엄한 서사시다.

원자폭탄 '리틀보이'를 화자로 내세워 원폭이 투하되는 시간을 100만분의 1초 단위로 확장해 끔찍했던 순간을 다각적으로 묘사하는 시인은 원폭 제작 과정과 파괴의 실체를 고발하는 서장에서 시작해 히로시마 근교 소학교에 다니는 재일조선인 소년 김중휘를 포함, 이옥장 등 당대 재일조선인들의 입을 통해 차별·가난·폭력에 시달리다 끝내 가공할 만한 위력의 원폭에 희생된 재일조선인의 삶을 추적한다.

미국과 일본이라는 두 가해국의 위선적이며 폭압적인 모습, 그들로부터 이중의 피해자로 고통을 겪었던 조선인의 참상이 이 시를 통해 생생하게 되살아나고 있다.

시인은 특히 일본인들로부터 가혹한 수탈을 당하며 목숨을 부지할 수밖에 없었던 태평양 전쟁 말기 조선인의 상황을 때로는 건조하게, 때로는 극렬히 감정이입해 그려냄과 동시에 한편으로는 핵폭탄의 개발과 인간을 향한 그 폭탄의 사용이라는 상상하기 어려운 비극의 역사를 의인화·타자화·비유·상징 및 다양한 시점의 변동을 통해 폭넓게 조명한다.

한 편의 시로서는 독특한 모습을 한 이 작품은 미소년(美少年·아름다운 소년이자 미국 소년이라는 중의적 의미), 즉 저자가 '아핵(兒核)'이라 명명한 '리틀보이'라는 이름의 원자폭탄이 폭음·빛·태풍·열을 동반하며 히로시마에 펼쳐놓은 지옥도에 대한 충실한 증언이면서 준엄한 경고이기도 하다.

'리틀보이'라는 이 시 한 편을 쓰기 위해 저자가 취재하고 공부하며 사색해 온 시간은 장장 8년에 이른다.

저자에 의해 빼곡히 작성된 미주는 단순히 주석의 기능을 넘어 작가의 시선과 사색이 담겨 그 자체가 작품의 한 층위를 이루고 있으며 이는 '리틀보이'의 비극을 다각적이고 밀도 높게 형상화하는데 기여한다.

'리틀보이'는 한국에선 존재조차 아는 사람들이 거의 없을 정도로 알려지지 못 한 작품이지만 역설적으로 일본에서는 상당한 반향을 불러일으킨 책이기도 하다.

한국에선 광복 50주년을 기념해 1995년 초판이 출간됐으며 2006년에는 스즈키 히사오 시인의 주도로 한성례 시인이 일본어로 번역하고 스즈키 히사오 시인이 편집을, 혼다 히사시 시인이 디자인을 맡아 일본어판이 간행됐다.

원폭 문제를 다룬 한국 시인의 시가 일본에 소개되는 것 자체가 처음이었던 당시, 그 내용과 분량을 통해 신선한 충격을 받았던 일본 문단에서도 '리틀보이'에 많은 관심을 보였다고 전한다.

일본에서와는 달리 한국에서는 이 책에 별다른 반응이 없었음을 오래 아쉬워해왔던 최측의농간은 후쿠시마 원전 사고 7주기를 즈음해 이 책 '리틀보이'를 최측의농간 시집선 5권으로 선보이기로 결정했으며 출간 시기는 늦어도 8월 6일, 즉 히로시마 원폭 투하 73주기를 넘지 않도록 했다.

최측의농간 시집선으로 새롭게 단장하면서 '장시집'이나 '시집'이 아니라 '장시(長詩)'로 표기했는데 이는 여러 시편을 모은 작품집이 아닌 한 편의 긴 시를 담은 책의 특성을 고려한 결정이다.

더불어 일부 개정과 함께 새로운 시대의 독자들을 고려, 전면적으로 새로운 편집을 했으며 초판의 일부 오류들 또한 바로잡았다.

'리틀보이'가 히로시마 상공에 투하된 지 70여 년, '리틀보이'의 초판 출간으로부터도 20여 년이 흘렀지만 상황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1986년 유럽 전역을 공포에 몰아넣은 체르노빌 원전 사고가, 2011년 후쿠시마에서는 세계에 충격과 공포를 안긴 원전 사고가 있었다.

후쿠시마 이후 세계 여러 국가들이 탈원전을 목표로 에너지 시스템의 근본적인 변혁을 꾀하고 있지만 한국에서는 유의미한 움직임이 없는 실정이다.

원자력을 여전히 중요한 에너지원으로 선호하는 국가들이 적지 않은 상황 속에서, 열강들의 내부에 여전히 핵탄두가 가득 쌓여 있는 이 세계 속에서 히로시마의 비극은 진행형의 아픔일 수밖에 없으며 분단된 한반도는 여전히 그 비극의 가장 큰 피해 당사자가 아닐 수 없다.

결국 이 책은 히로시마의 비극이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 속에서 말끔한 얼굴을 한 지옥의 현시로 끊임없이 되풀이되고 있음을 증언하는, '리틀보이'라는 이름의 지옥의 묵시록이다.

416쪽. 1만7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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