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혜련 사회복지사

[정혜련 사회복지사] 요 며칠 폭염특보 재난문자를 받고, 뉴스에는 연일 높은 온도에 노약자들을 위한 건강관련 뉴스가 심심치 않게 오르내린다. 에어컨도 없고 선풍기도 없던 그 옛날 우리 조상들은 어떻게 여름을 나셨는지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 그리하여 순수한 호기심에 문득 조선왕조실록을 찾아보게 되었다. 그러나 실록의 기록은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조선왕조실록 중 세종실록에 기록된 충청도 날씨기록을 보면 1433년 8월 23일 충청도 도사(都事) 조주(趙注) 영춘현감(永春縣監) 민달손(閔達孫), 보은현감(報恩縣監)우흥범(禹興範)이 임지로 떠나기 위해 임금에게 하직 인사를 하니, 임금이 직접 그들을 알현하고 “내가 듣기로 그 지방이 일찍이는 가물었고 늦게는 큰물이 져서 곡식들이 손상되었다고 하니, 백성들의 생계가 걱정스럽다. 그대들은 마땅히 이 뜻을 마음에 품고 백성들의 목숨을 구제하라.”고 말했다.

또한 1434년 8월 16일에는 대흥현감(大興縣監) 임중(任重)이 임지로 떠나기 위해 하직을 고하니 “충청도는 근래 흉년을 만나 내가 매우 염려하니, 백성들을 은혜로 구휼하여 굶주리지 않게 하고 형벌을 삼가며 농업과 잠업을 권장하여 백성들의 생활을 넉넉하게 하라.”고 말했다.

1434년 8월 10일에는 정사를 보았다. 임금이 비가 고르게 내렸는지 그렇지 않은지를 물으니, 좌의정 맹사성이 “금년의 비는 북쪽 지방은 많이 내렸고 남쪽 지방은 적게 내렸습니다.”라고 아뢰었다. 임금이 “내가 듣기로도 전라도와 충청도에 비가 흡족하지는 않지만, 기우제를 지낼 정도에 이르지는 않았다고 한다. 논은 괜찮겠지만 메밀과 콩을 가는 경우 때를 놓쳐서 안 된다.”라고 말하니, 도승지 안숭선이 “날씨가 흐리고 비가 와서 밭이 너무 질기 때문에 갈고 심을 수가 없습니다.”라고 아뢰었다.

그러자 임금이 “금년에는 경기도에 비가 알맞게 왔으니, 밭이 진 것은 비가 너무 많이 왔기 때문이 아니라 오랫동안 흐렸기 때문이다. 5월에는 오히려 지나치게 가물 듯 한 염려가 있었으니, 금년의 비는 과하다고 말할 수 없다”라고 말하고 이로 인해 올해 곡식이 실제 어느 정도 익었는지를 물으니 안숭선이 “비와 볕이 때를 잘 맞추었으니 어찌 잘 되지 않겠습니까?”라고 아뢰었다.

지금처럼 농업생산력이 높지 않았던 조선시대에는 여름의 더운 날씨는 농사에 너무나 큰 영향을 주었고, “덥나 시원하나!”의 문제가 아니라 “사느냐 죽느냐!”의 문제였던 것이다. 더운 날씨에 가뭄이 들어 곤궁해질까 걱정하는 우리 조상들의 마음에 고개가 숙여진다

. 580년 전 선조들은 가뭄에 먹고 사느냐를 걱정했는데, 그 후손들은 더 시원하게 보내기 위해 에어컨을 살까, 수박 한 조각을 먹어볼까, 여행을 갈까 생각하고 있으니, 어찌되었든 다행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문제는 조상님들은 안했던 전기세 걱정, 그리고 전력공급을 위한 핵발전소와 환경문제를 고민할 따름이다. 이러니저러니 시대적 과제는 항상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에어컨 온도를 낮추려던 손으로 얼음냉수를 마시며, 이 더운 날씨에 모든 분들이 안녕하게 이 여름을 나기를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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