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호 청주대 의료경영학과 교수
[정규호 청주대 의료경영학과 교수] 더위쯤이야 하고 이제껏 버텨 왔는데, 지난주 정장을 하고 서울을 다녀오다 혼쭐이 났다. 번잡한 서울이라 그런지는 몰라도 청주보다 몇 도는 더 더운것 같았다. 이번 상경은 다음달 8일 개봉 예정인 '공작'이라는 영화와 동시에 같은 이름으로 책이 출간되어, 영화보다 조금 일찍 개최된 출판기념회에 초대를 받은 것이다. 작품속의 주인공이 중·고등학교 동기인 관계로 친구들과 함께 나들이를 한 것이다. 그동안 몇몇 인사들의 출판기념회에 간적은 있지만, 이번처럼 작가와의 관계나 출판기념 행사에 의미를 두고 제대로 참석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약 2시간 정도 진행됐는데 사진도 찍고 일부 내용은 수첩에 적어 오는 등 알찬 시간을 보냈다. 귀가를 하고자 지하철을 타고 버스터미널에 도착하니, 미리 예매해 놓은 차편보다 여유시간이 있어 인근 커피숍에서 오랜만에 학창시절로 돌아가 얘기에 묻혀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지하철에서 확인한 것이지만 핸드폰의 전지가 소진되어 충전할 곳을 찾던 중, 친구들과 들린 커피숍에 여러 대의 충전장치가 있어 얼른 접속해 놓고 이런저런 얘기에 몰두하고 있었다.
사단은 버스가 출발하여 큰 대로변의 신호에 대기하고 있을 때 벌어진 것이다. 갑자기 핸드폰을 충전하던 채로 두고 온 것이 생각나는 것이었다. 핸드폰이 없는 경우를 상상하다 순간 나도 모르게 '아, 내 핸드폰'하고 소리를 지른 것이다. 나는 운전기사에게 즉시 뛰어나가 내려야겠다고 다급하게 요청하고 친구들도 동조하니, 운전기사도 엉겁결에 차문을 열고 내려주었다. 내리기는 했지만 순간 머릿속이 하얘지는 것 같았다. 터미널까지 그리 멀지 않은 것 같은데 밤길이라 그런지, 몹시 당황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방향감각을 잃고 헤매었으며, 막상 커피숍에 그대로 보관되어 있는지도 모르고, 이 차가 막차인데 어떻게 집에는 돌아가야 하는지 등등…….
커피숍은 문을 닫기 위해 정리를 하고 있었는데 내 핸드폰은 처량하게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으며, 청주의 다른 막차가 출발 2분전으로 기다리고 있었다. 허겁지겁 차에 올라 한숨을 돌린 후, 이런저런 생각에 잠기었다. 얼마 전 어떤 할아버지가 손주를 차에 두고 볼일을 보러 다니다 애기가 차안에서 숨을 거둔 사건이 떠올랐다. 정신을 놓고 사는게 아닌가 싶고, 한없이 서글프고 부끄러웠다. 모든 순간이 한편의 짧은 드라마 같았다. 되어진 일들이 반대로 되었을 경우를 생각해 보니 아찔한 것이었다. 결과는 여하튼 감사했다.
실은 출판기념회 식장에서 옆에 앉아 있는 친구에게 앞으로 나도 그간의 써온 글을 모아서 이와 같은 출판기념회를 하고 싶다는 얘기를 하며, 이렇게 세부적인 사항까지를 적고 있노라고 얘기한 생각이 난다. 너무 골똘해 있었나 보다. 마치 내가 주인공 친구처럼 행동했나 보다. 아니면, 나이가 들어 기억력이 현저히 떨어져 가는 것은 아닌지.
냉정하게 생각해 보면 그렇게 서두르지 않아도 되었을 것을, 모든게 우쭐하고 겸손치 못한 처사에서 비롯된 것 같다. 성경말씀에 '그런즉 선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는 구절이 생각난다. 그렇다, 일어설 때마다 자리를 옮길 때 마다, 더 조심하고 침착하여 본을 보이는 성숙한 어른답게 행동하리라. 많이 배운 서울 나들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