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향숙 수필가

[이향숙 수필가] 서쪽 하늘이 붉다. 뜨거운 여름날의 여운이 고스란히 남아 봉숭아 꽃물이 들었다. 시나브로 꽃물이 지고도 한동안 어둠이 내리지 않는다. 깊은 밤이 지나야 아침이 오련만 어떤 이에게는 조금 서둘러왔던 시간이 누군가에게는 더디 오기도 한다. 산의 정상에 오르는 것 뿐만 아니라 집으로 돌아가는 길도 그러한가 보다. 해는 이미 졌지만 희미하게 보이는 세상은 차라리 눈물겹다. 육신의 시간과 영혼의 시간이 합일점을 찾지 못했을 때 당신도 모르게 흐르는 눈물 사이로 뿌옇게 보이는 세상이다. 무채색이지만 몽환적이기도 하다.

이제 겨우 반세기를 살아 낸 사람의 눈으로 보는 이 시간이, 가슴으로 와 닿는 것은 무엇일까. 우리 곁에 언제까지나 계실 것만 같던 양가어머니에게 찾아 온 계절이라 그러한가 보다. 자식들과 떨어져 남의 손에 몸을 의탁하신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사람노릇을 다하지 못함에 부끄럽고 아리다. 삶의 버거움을 핑계 삼아 회피하는 불효자는 어머니가 입이 궁금하면 먹으라던 사랑꾸러미를 버스에 놓고 내렸다.

노파는 툇마루에 앉아 꾸벅이다 게슴츠레한 눈으로 먼 산을 본다. 뜨거웠던 계절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그것들을 잡으려 헛손질하지만 자꾸 비껴간다. 누구에게나 이런 시간이 온다. 찰나처럼 지나가기도 하고 툇마루에 앉아 꾸벅이다 게슴츠레한 눈으로 먼 산을 보기도 한다. 백수를 해야지만 만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돌이켜보면 한창 아이들 키우던 불혹쯤 되었을 때 내게도 어둠의 그림자가 내렸었다. 순서도 시간도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선지 물에 젖은 솜뭉치를 지고 있는 무거움으로 하루하루를 버티어 내야만 했다.

피골이 상접한 것은 보이는 몰골뿐만이 아니었다. 원인을 알 수 없는 육신의 고통은 영혼까지 갉아 먹어갔다. 황폐함이란 이루 말할 수 없는 것 이었다. 하지만 어린 아이들의 부모이기에 견디어 내야 했다. 가뭄에 마른 풀처럼 푸석이다 몇 방울 떨어진 빗방울을 맞고 아슬하게 다시금 새벽을 맞이할 수 있었다. 박명의 시간을 잘 견디어 내고 다시금 아침을 맞이한 것이다. 젊은이에게도 이럴진대 구순의 양가 어머니들의 외로움은 어떠할까. 평생 가족을 위해 살아 온 분들에게 상을 드려야 하건만 형벌 같은 삶이 되었다. 이 형벌의 삶은 쏜살같이 우리 모두에게 어김없이 다가 올 것이다.

나의 일터는 양가어머니처럼 홀로 지내시는 노인들이 자주 오시는 장터이다. 평소 드시고 싶던 찬거리를 꼭 쥐고 의자에 앉아 배달 순서를 기다린다. 젊은 직원들과 눈이라도 마주치면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바쁜 와중에 그들이 다가와 손이라도 잡아주면 외지에 있는 자식을 만난 듯 애틋해 한다. 하지만 다음날에 다시 만나면 손을 잡았던 직원을 기억하지 못한다. 그렇다고 젊은이는 서운하지 않고 노인은 미안해하지 않는다. 천연덕스럽게 두 어 달 만에 내 부모를 만난 듯 반가워한다. 지금은 그들의 박명의 시간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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