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현숙 원광대 서예문화연구소 연구위원

[정현숙 원광대 서예문화연구소 연구위원] 한국 정치사에서 한 정치인의 죽음이 이토록 애절하고 비통하게 국민들의 가슴을 후벼판 적이 또 있었던가. 그것도 전체 300명 가운데 1명에 불과한, 그리고 거대 정당이 아닌 의석 수 6명인 소수 정당 소속의 한 국회위원의 죽음이 말이다. 한국 현대 정치사에 '없는 자를 위해 일생을 바친 정치인'으로 오롯이 기록될 노회찬, 그의 명복을 비는 추모 열기를 연일 계속되는 최악의 폭염도 말릴 수 없게 만든 그 사람의 값어치는 얼마일까.

왜 평범한 시민들은 그의 영정 앞에서 그토록 절절하게 통곡하는가. 경기고, 고려대라는 최고 학력을 지녔음에도 누구나 택한 꽃길 마다하고 독재에 항거한 노동자로 사회에 첫 발을 내디뎠고, 마침내 국회위원이 되기까지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생으로 점철된 그의 발자취가 새삼 조명되고 있다. 그런 사람과 동시대를 살았다는 사실만으로도 역사의 한 페이지에 서 있는 듯 가슴이 찡해진다. 촌철살인으로 대변되는 그의 뚜렷한 정치철학, 사명감과 책임감, 유머와 해학, 긍정적 마음과 해맑은 웃음 등 그에 대한 평가는 사람에 따라 각기 색깔을 달리 할 수 있다.  

한국 현대사의 물줄기를 바꾼 가장 신뢰받는 방송사와 현재 한국에서 가장 신뢰받는 언론인, 손석희 그가 그 방송국의 앵커브리핑을 통해 참으로 진지하게 3일간 노회찬을 추모한 이유는 무엇인가. 정치란 무엇이며, 정치인은 어때야 하며, 시민들은 정치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 참으로 만감이 교차한 지난 한 주였다. 특히 현재의 소위 정치인이라는 사람들에게는 더욱 그랬을 것이다. 이 땅의 민초들은 죽어서 다시 산, 노회찬과 같은 지도자를 간절히 바란다는 사실을 그들도 섬뜩하게 느꼈을 것이다.

아직도 대부분의 정치인들이 외면하는 아니 말로만 섬기는, 계란으로 바위치기를 계속하는 이 땅의 약자들을 위한 대변인으로 그가 좀 더 오래 머물렀으면 우리 사회는 살기가 좀 더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진한 아쉬움이 남는다. 노회찬은 그가 칭한, 이름이 있되 이름으로 불리지 않은 무수한 '투명인간들'의 희망이었다. 그들은 아니 우리는 제2, 제3의 노회찬을 다시 만날 수나 있을까. 있다면 언제쯤일까.

스스로도 인정한 자신의 실수를 못 이겨 목숨과 바꾼 그의 죽음이 잘한 일은 아닐지라도 그것이 시사하는 바는 자못 크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비난 받으면서 그것을 감수하고, 지금까지 보여 준 행보를 더 계속했더라면 좋았을 텐데 하는 미련은 나만의 마음만이 아닐 터. 그런 뻔뻔함조차 그는 받아들일 수 없었던 모양이다.

정치인의 소명은 무엇인가. 바람직한 지도자상은 어떤 모습인가.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그는 우리에게 수많은 질문을 남기고 갔다. 그러나 정답은 없고 시간은 또 그렇게 흘러간다. 모든 사람이 정치인이 될 수도, 지도자가 될 수도 없다. 다만 우리는 사는 동안 자신의 자리에서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바를 향해 묵묵히 전진하기만 하면 된다. 이것이 진보적 삶이요 사회를 발전시키는 원동력일 것이다. 죽은 자에 대한 평가는 살아남은 자와 역사에 맡겨두면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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