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태 건양대 교수

[박기태 건양대 교수] 올 여름 더위는 가히 살인적이라고 말해도 과언은 아닌 것 같다. 미동조차 없이 가만히 앉아 있어도 이마를 타고 줄줄줄 흘러내리는 땀방울은 얼굴뿐만 아니라, 온 몸을 흠뻑 적시며 속된 말로 목구멍까지 숨이 컥컥 막히게 만든다. 그런 까닭에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곳이면 그 어디든 달려가서 맨 몸으로 뒹굴고 싶은 마음뿐이다. 하지만 그러지 못함의 고독 속에서 오늘도 나는 무더위와 한 판 씨름을 해야 할 것 같다. 무더위 속에서 내가 찾는 고독은 어떤 빛깔일까? 햇살이 쨍쨍 내리쬐는 푸른 하늘을 처다 보면서도 한 줄기 시원한 빗방울이 내려주기를 바라는 심정으로 하늘이 온통 담회색으로 느껴지는 암중모색의 일환에 내 고독의 빛깔은 아마도 대부분 낡고 변질된 그리고 살아오면서 빛바랜 옥양목 빛깔일 것 같다.

지난해 여름 우연한 기회로 한 사람을 알게 되었다. 그와의 인연은 마치 옛 노래의 “여름에 만난 사람 가을이면 가버리네”라는 가사처럼 그의 일방적인 결별 선언으로 일 년도 채 못돼서 끝났다. 하지만 그가 궁금한 이유는 그의 이기적인 삶의 태도에서 비롯된 고독이 너무나도 충격적이고 비정상적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서로를 잘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그는 처음부터 나에게 자신의 직장생활과 동료들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했다. 그의 이야기들을 생각해 보건데 그의 삶 속에는 매우 많은 부적응 장애가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그에게는 모든 것이 불만스러웠고 어느 것 하나도 만족되는 것이 없었다. 누가 알아주지도 않는 후덕하지 못한 우월감으로 동료들을 무시하고 깔보며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합리화하기 위해서 개념없는 말과 행동으로 동료들은 물론 주변의 사람들에게 많은 상처를 주었던 것 같다. 심지어 어느 때는 도저히 해서는 안 될 일을 해서 곤욕을 치른 적이 있다고 그의 동료들이 귀띔해주며 그와 어울리지 말 것을 권하기도 했다. 이런 상황들로 빚어진 그가 느낀 고독은 얼마나 깊었을까?

우리의 삶은 어울려 사는 삶이다. 그러나 그 어울림은 반드시 지켜야할 사무적인 일이 아니다. 그보다는 오히려 마음을 터놓고 서로의 어울림을 약속하는 인간적인 교분을 만들어 가는 인정어린 삶이다. 그런고로 남을 탓하고 원망하는 사람치고 불행하거나 고독하지 않은 사람을 나는 아직 보지 못했다. 좀처럼 남을 원망하지 않으면서 잘못된 일을 모두 자신의 탓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매우 아름답다. 분명히 자신의 잘못이 아닌데도 “네, 제 탓이요. 제 부덕의 소치입니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에게서 나는 늘 감동을 받는다. 그 이유는 성숙함과 인간적인 세련미를 물씬 풍겨내는 것 같아서이다.

우리의 삶 속에서 누가 누구의 고독을 보상해 주는 법이란 없다고 생각한다. 자신은 타인들을 비하하고 이기적으로 행동하며 공통적인 삶 속에 어우러지기보다는 되지못한 우월감을 과시하는 이러한 사람을 위해 어느 누가 한 치의 여유나 아량을 베풀 수 있겠는가를 생각해보자. 따지고 보면 우리 주변의 뭇 사람들치고 영악하기 그지없고 악착스럽기 짝이 없는 사람이 아닌 사람은 없다. 사람들 모두 권력이나 지위 또는 명예를 위해 ‘결사적이다’라고 표현해야 마땅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름 제멋대로의 삶을 살면서 그리고 남에게 상처를 주면서 고독하게 사는 것보다는 남보다 한발 짝 앞에 나서고 싶고 허세부리고 싶은 세상에서 자신의 우월성을 타인에게 과시하기 보다는 조금씩 이해하고 어울리려는 그리고 자신이 인정받기 위해서 남을 먼저 인정해주는 그러한 보일락 말락한 삶을 사는 것이 고독을 극복하는 길이되리라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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