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원 전 언론인

 

[김종원 전 언론인] 서해 굴업도는 천혜의 섬이다. 지난달 말 찾은 굴업도는 마침 '개기월식'이 있었다. 지인들과 굴업도 개머리 언덕에서 야영을 했기에, 제대로 월식을 볼 수 있었다. 달을 보며, 바닷바람을 맞으며, 지인들과 소주잔도 기울이며, 정말로 낭만적인 밤이었다.이태백은 '월하독작(月下獨酌, 달 아래 홀로 마시는 술)'에서 "꽃 사이에서 술 한 병 놓고/아는 이 아무도 없이 홀로 마시다가/잔을 들어 밝은 달을 청해 오고/그림자를 마주하니 세 사람이 되었네/달은 본시 술 마실 줄 모르고/그림자는 공연히 나만 따라하지만/잠시 달과 그림자를 벗하여 /내가 노래하면 달은 서성이고 내가 춤추면 그림자는 어지러이 움직이는데/깨어 있을 때는 함께 즐기며 기뻐하지만/취한 후에는 각각 흩어지겠지.(후략)"라고 읊었다.  굴업도에서 낭만을 한참 찾고 나서 그 주변을 살폈는데, 재밌는 문구가 적힌 담벼락을 보게 됐다. 굴업도는 세 가구가 사는데, 그 중에서 고씨 민박집이 있다. 바로 그 집 담벼락에 적힌 문구다.

내용들이 한번쯤 봤을 듯싶기도 한데, 아마도 인터넷에서 돌아다니지 싶다.'세 번 참으면 호구 된다', '티끌 모아봐야 티끌', '감사의 표시는 돈으로 하라' 등등이 적혀있다. 문구가 직설적이고, 일리가 있어서 함께 갔던 지인들도 고개를 끄덕이는 이들이 많았다. 다만 '지금 공부 안하면 더울 때 더운데서 일하고 추울 때 추운데서 일 한다'는 문구는 좀 거슬렸다.

 

'공부는 때가 있으니 할 때 열심히 하라' 라는 의미로 받아들인다 해도 과하다는 생각이다. 오히려, 학벌주의를 조장한다는 느낌도 들었다. 공부라는 의미가 결국 대학입시를 말한다면 좋은 대학을 가야 좋은 직업을 갖게 된다는 논리로 발전하게 된다. 마침 대학입학제도 논의가 갑론을박 하고 있다. 수십 년을 거쳐 온 논의다. 논의 핵심은 역시 공정함이다.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운' 입시제도가 필요하다. 더불어, 좋은 대학을 가지 않아도 학벌이 높지 않아도, 잘 먹고 살 수 있는 사회가 돼야 한다. 그러면 지금까지 우리가 겪어 왔던 대학입시 시행착오를 겪지 않아도 된다. 대학은 직업 훈련소가 아니고 사회적으로 가치 있는 발전을 이룩할 수 있는 교두보가 돼야 한다.

대학이 아카데미즘을 고수해야 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대학에서 더 배워야 할 것들은 우리 삶에 대한 인문학적 소양이지, 직업적인 전문성은 아니다. 직업적인 전문성은 그 직업을 수행하면서,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발전할 수 있다. 굴업도에 함께 했던 지인들은 같은 대학 동문들이다. 그들과 함께 했던 이야기들은 "어떻게 사는 게 인간답게 사는 것이냐"지 "직업적으로 어떤 것이 좋다"는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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