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일보 사설] 지난 15일 여야 정치권은 대한민국의 건국일을 놓고 또 다시 치열한 공방을 벌였다.

나라가 전체가 불가마 같은 폭염에 갇혀 국민들은 기진맥진해 있고, 경기 침체로 먹고살기 어렵다는 아우성이 사방에서 들려오는데 정치권이 시급한 문제는 외면하고 비생산적인 논쟁을 벌이고 있으니 국민들은 짜증스럽기만 하다.

건국일이 언제인지는 보수와 진보가 10여년간 한치 양보없이 지속해온 해묵은 논쟁 주제다.

진보진영은 대한민국의 건국일을 1919년 4월13일 또는 4월11일이라고 주장한다.

반면 보수진영은 제헌국회가 헌법을 제정하고 이 헌법에 의해 선출된 이승만 정부가 출범한 1948년 8월 15일을 대한민국 건국일로 본다.

건국절 논쟁은 지난 2006년 한 대학교수가‘'우리도 건국절을 만들자’라는 글을 발표하면서 본격 발화됐다.

이듬해 당시 야당이었던 한나라당 정갑윤 의원이 광복절을 건국절로 개칭하는 법안을 제출했다.

정의원은 “광복절과 대한민국 정부 수립일이 같아 실질적인 건국일인 1948년 8월 15일의 의미가 축소돼 왔다”며 건국절 제정을 주장했다.

이명박 대통령 취임 직후인 2008년 4월에 대한민국건국 60주년기념사업위원회를 국무총리 산하에 설치되면서 논쟁은 확산됐다.

그해 8월 15일 건국60주년 기념식 행사가 열렸으나 야당과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 등 진보진영은 행사를 보이콧하면서 건국절은 보수와 진보를 가르는 또 하나의 표지판이 됐다. 

고 노무현 대통령은 임기를 마치고 봉하마을에서 거주하고 있을 때인 2008년 광복절에 찾아온 방문객들에게 당시 보수단체인 뉴라이트 등이 추진하던 건국절과 관련해 “1948년 정부 수립의 정통성을 강조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있으나 그것은 그 세력들의 평가”라고 언급해 ‘1948년 건국’을 부정했다. 

박근혜 대통령 시절인 2014년에 새누리당 윤상현 의원이 건국절 제정 법안을 또 다시 발의하면서 논쟁이 재점화됐고, 박근혜 대통령은 2016년 광복절 경축사에서 “오늘은 71주년 광복절이자 건국 68주년을 맞이하는역사적인 날”이라고 언급해 ‘1948년 건국’을 강조했다.

건국절이 올해 격한 진영 대결을 불러온 계기는 문재인 대통령의 지난해 광복절 기념식 축사였다. 

문 대통령은 여기서 “2년 후 2019년은 대한민국 건국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는 해”라고 규정해 보수 측의 주장을 뒤집었다.

정부수립 70주년을 맞은 올 8·15에 별도의 경축 행사를 마련하지 않았고 이에 관한 문 대통령의 메시지도 없었다.

이에 맞서 지난 14일 자유한국당 김병준 비대위원장과 김성태 원내대표는 ‘1948년 건국’이라는 보수의 입장을 재확인했다. 

보수진영은 통설로 인식돼온 ‘1948년 건국’을 부정하고 ‘1919년 건국’을 주장하는 역사관의 밑바닥에는 대한민국 정부의 정통성을 인정하지 않는 정서가 깔려있는 것으로 의심한다.

이런 역사관으로 교육받은 세대는 대한민국에 대한 자부심 대신 ‘태어나선 안될 나라’로 인식하고 있어 문제가 심각하기도 하다.

이제 정치 지도자들은 건국절 공방을 그만 접어두고, 객관적 시각을 가진 학자들이 대거 나서서 양심에 따라 정확한 건국일 판정을 내려 소모적 논쟁을 종식시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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