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옥자 수필가

[한옥자 수필가] 초등학교 동창 중에 성씨만 겨우 기억나는 선생님의 딸이 있다. 그녀의 집은 필자가 다니던 초등학교의 교문과 가까운 곳이라 등하교 때면 대문을 나서던 그녀와 더러 부딪쳤다.

어느 날에 학교 내에서 뵙던 선생님도 그 대문을 열고 나왔다. 그 시절은 곁방살이가 흔할 때라 한집에 사는 사람쯤으로 알았다. 그러나 동급생으로부터 스승과 제자이자 아버지와 딸이라는 말을 듣고 난 후, 더욱 아는 체하지 못했다.

발랄한 성품 때문인지 그녀 주위에는 언제나 사람이 들끓었다. 교실에서도, 복도에서도, 운동장이나 교정에서도 그녀의 웃는 목소리는 컸고 말도 수다스러울 정도였다. 그에 비해 소심하고 말수 적고 수줍음이 많았던 필자는 언제나 그녀 먼발치에 서 있어서 새새틈틈 소통이 막혔다.

가까이 지내지 못한 결정적 이유는 선생님의 딸이라서, 라는 말이 가장 알맞다. 물론 몸이 허약해 휴학했기 때문에 작은 면 소재지의 하나밖에 없는 중학교의 선후배가 된 탓도 있다.

필자의 학창 시절에는 선생님을 하늘과 동급으로 두었다. 선생님 딸도 당연히 같은 급수였다. 선생님의 딸이라는 신분 때문에 동급생 모두에게 선망의 대상이긴 했으나 공부를 잘했던 학생은 아니었던 거로 기억한다. 선생님은 병약한 딸이 몸도 마음도 건강하게 성장하길 바랐을 테니 시험지를 사전 유출하는 범죄나 다름없는 편법을 가르치지는 않았을 것이다.

교육부가 교육청과 회의에서 상피제를 도입하기로 합의했다는 웃픈 소식이 들린다. 상피란 근친상간을 의미하는 말이기도 하지만 이 경우는 서로 피한다는 의미이다.

오죽하면 그러랴 싶다가 어쩌다가 인사담당이나 시험관, 승지와 무관직 벼슬아치에게 적용되던 고려 시대부터 조선 시대에 이르기까지 적용되던 법제가 이 시대의 교육계에도 부활해야만 했던가. 본종(本宗)뿐 아니라 외친, 처친 등을 같은 관서에 두지 않고 확대에 확대를 거듭해봐야 실제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던 상피제가 아니던가.

서울 강남의 모 명문 여고의 교무부장인 아버지의 딸인 두 자매의 전교 1등 시험 성적이 발단이다. 수능점수와 학생부 종합전형평가로 명문 대학의 입학 여부가 결정되고 직장과 일생의 승패가 좌우하는 현실이라서 그렇다. 부모의 능력이 자식의 성공이 되는 사회라서 그렇다. 개천에서 용 난다는 속담은 옛말이 되었고 아무리 공론화 과정을 거쳐 대입제도를 개편해봐야 혁신이란 말뿐이라 그렇다. 그 무엇보다 성적 몇 점을 올리기 위해 3년 내내 목을 매고, 어떤 방법으로든 너를 이겨 내가 살고 봐야 하기 때문이다.

필자의 학창시절에는 1등까지는 아니지만, 최하위 성적이던 학생이 상위권으로 진입하여 교단 앞에서 박수를 받았던 일이 있었다. 진심의 축하 박수를 받았던 그 학생은 머리는 좋으나 공부에 대해 흥미를 잃었다가 재기한 사례이다.

성적을 올릴 계획을 세웠다면 계단을 통하거나 그것이 성에 차지 않으면 저속 엘리베이터를 이용하자. 시험지 사전 유출을 통해 성적을 올릴 심산이었더라도 이와 같은 방법을 이용했다면 들통 나지 않게 박수를 받을 수도 있었겠다.

단번에 옥상에서 1층에 도착하기 위해 창밖으로 뛰어내리면 죽기밖에 더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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