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향숙 수필가

[이향숙 수필가]  여름의 끝자락을 잡고 기어이 결혼식을 올렸다. 신랑이 학생 신분이어서 방학이 끝나기 전 친지와 벗들을 모셨다. 소박하지만 정성을 들였다. 값비싼 보석이 아니어도 화려한 연미복을 입지 않아도 두 사람은 충분히 멋지고 아름다웠다. 그날 축하객들과 주례에게 받은 숙제는 오래도록 사랑하며 행복하게 살기였다.

두 해전에 은혼식을 지냈다. 부모님 도움 없이 이루어 내려고 무던히도 애쓰며 살았다. 그러다보니 앞만 보고 뛰었고 아이들과 서로에게 소홀 할 수밖에 없었다. 홀로 되신 양가 어머니께도 정성을 다하지 못했다. 두 사람이 한 가정을 이루어 잘 가꾸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풀기 어려운 숙제가 아닌가 싶다.  사랑하여 결혼 했음에도 불구하고 신혼에는 서로 주도권을 잡으려 기싸움을 했었다. 아이들 어릴 적엔 육아에서 벗어나려 안간힘을 썼었다. 정서적으로 가장 친밀한 사이임에도 미움과 원망으로 보낸 세월도 있었다. 가지 않은 길에 대한 아쉬움으로 밤을 지새우기도 했었다.

신이 인간에게 '함량의 법칙' 같은 삶의 균형을 선물 했다고 한다. 이것은 행복과 불행, 기쁨과 슬픔처럼 반대되는 것들을 가느다란 실에 묶어 주머니에 넣었단다. 행복을 손에 쥐고 잡아당기면 불행까지도 따라 나오게 되었다. 하여 집안마다 어떤 종류로든 슬픔이 있고 아픔 속에서도 웃음을 찾아내나보다. 그래선지 수시로 지옥과 천국을 맛보았다.

이쯤에서 보니 그는 참 따뜻한 사람이다. 그를 만나서 내가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지 시시때때로 알게 되었다. 진짜 사랑을 다시금 깨달았다. 책에 나와 있어도, 누가 말해 주어도 와 닿지 않던 것을 스스로 느끼게 되었다. 얼마 전 친정어머니의 거취 문제로 마음이 복잡할 때였다. 며느리들의 공통점인지는 모르겠으나 시어머니께 무언가를 해 드릴 땐 당당한데 친정어머니께는 그렇지 못했다. 내 마음을 알아버린 그가 친정어머니에게도 마음껏 해드리라고 말했다. 어쩌면 당연한 말이 내게는 따뜻한 감동이 되었다.

요즘 젊은이들은 많은 것을 포기하며 산다하여 n포 세대라 불리 운다. 취업이나 결혼이 이룰 수 없는 꿈처럼 느껴질 만큼 어려운 시대이다. 우리 집에도 곧 닥쳐 올 어두운 미래를 안고 있는 두 아들이 있다. 결혼 생활 중 우리가 받은 가장 아름다운 선물이다. 그들도 미래는 답이 없는 것으로 보이나 보다. 하지만 취업하고 제 가정을 꾸리게 된다면 어떠한 어려움도 이겨 낼 수 있는 용기와 힘이 생길 것이다.

부모는 시간이 지나면 물처럼 흘러 갈 터이고 스스로가 주인공이 된다. 위로가 되는 가정이 있어야지만 고단한 순간들을 버텨내고 진정한 행복의 기쁨을 맛볼 것이다. 행복에 겨워 달뜬 날보다 살아냈다는 말이 더 어울릴 삶을 살아 낸 우리가 그랬던 것처럼 그들도 그러하리라. 사람 이다보니 가끔은 불행하다고 느끼기도 했지만 내가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지 잘 알고 있다. 가족이 건강하고 일터가 있으며 글을 쓰는 사람으로 산다는 것 자체만으로 넘치게 즐거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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