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애 수필가

[김영애 수필가] 사계절 중에 가을 겨울을 좋아하는 나에게 올해 여름은 지옥이었다. 봄가을에는 틈만 나면 여행을 쏘다니다 여름이 되면 스님이 하안거에 들어가듯 깊이 칩거하고 지내면서 휴가를 대신 했다. 이 여름의 끝은 어디일까! 스님은 도라도 닦으며 내공이라도 쌓겠지만 더위와 싸우면서 조금이라도 시원하게 여름을 날 수 있는 묘안을 생각했다.

지인이 뉴욕에 가면서 꼭 하고 싶은 버킷 리스트 중에 하나가 브로드웨이 뮤지컬 '시카고' 관람이라고 했었다. 그녀는 다녀온후 함께 식사하는 자리에서 내내 '시카고' 관람 자랑을 했다. 그래서 인지 기회가 되면 꼭 보고 싶은 작품이었다. 그런 바램 때문이었을까, 어느 날 청주공연 포스터가 눈에 들어왔다. 공연 한 달 전 이었음에도 이미 예약이 전석매진이었다. 세상에나 놀라움과 서운함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예약대기를 걸어두고 기다렸다.

한 달에 한번은 꼭 얼굴을 보고 사는 친목모임이 있다. 지금은 청년이 되어서 한 가정의 가장들이 되어 있는 아들들의 중학교 엄마들 모임이다. 아들들을 잘 키워보겠다는 학교치맛바람으로 만나서 지금은 모두 예순을 넘은 나이가 되었다. 아들들은 장성해서 새 둥지를 틀었고 이제는 우리가 어떻게 하면 건강하고 행복하게 잘 살 수 있을까에 대해서가 대화의 관건이다.

엄마들 모임에서 함께 가기로 한 뮤지컬 '시카고'의 예매표가 기적적으로 날라 왔다. 함께 브로드웨이의 유명한 뮤지컬 '시카고'를 관람한다고 생각하면서 한여름 더위를 조금은 잊을 수가 있었다. 좋은 사람들과 좋은 것을 함께 공유하는 것보다 행복한 일이 또 어디 있을까! 공연 날을 하루하루 기다리는 시간조차도 행복한 즐거움 이었다. 뉴욕에 브로드웨이42번가가 아니면 어떠랴! 20여년이 넘도록 극찬을 받으면서 가장 롱런 공연 중 이라는 뮤지컬 '시카고'의 화려한 막이 올랐다.

라이브 재즈 오케스트라의 농염한 재즈 뮤직이 흐른다. 화려한 관능의 몸짓 속에는 통렬한 사회 풍자가 그려져 있었다. 자극적인 살인을 저지르고 언론의 관심을 한 몸에 받는 여죄수들로 가득한 1920년대 미국 시카고의 쿡 카운티교도소를 배경으로 한다. 부패한 사법제도와 범죄자가 유명세를 떨치는 현실을 풍자하는 스토리다. 별다른 무대장치도 없이 무대가운데 자리 잡은 재즈 오케스트라, 연기를 하듯 동적으로 연주하는 지휘자와 대 스타들의 연기와 춤 노래는 역시 '시카고'였다.

방탕한 사랑은 죄악을 낳고 헛된 욕망은 파멸에 이르는 메시지를 유쾌하고 흥겹게 전달했다. 귀에 익은 끈적한 재즈 음악이 흥얼거려진다. 한여름 예술의전당 밤하늘에는 반달이 하얗게 떠있었다. 저 달이 차면 스님도 하안거를 마치신다. 나도 이제 가을을 맞이할 준비를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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