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영 전 단양교육지원청 교육장·시인

[이진영 전 단양교육지원청 교육장·시인] 기가 막히게 꾸며 놓은 공원이다. 그동안 뭣 하느라 이 좋은 것도 못 보고 바삐 살았을까 하는 후회가 밀려온다. 도시마다 곳곳에 이런 공원이 있는 게 신기했다. 괜히 손해 보며 산 듯하다. 각 지방의 단체장들이 신임을 얻기 위해 잘 보이는 일부터 한 결과라고 하더라도 고맙다. 광장을 느릿느럼 가로질러 가는 사람이나 나무 그늘 밑에 앉아 있는 사람이나 모두 여유롭다. 시간이 멈춘 것 같은 나른한 오후다.

한쪽 구석에는 연못이 예쁜 모양으로 만들어져 있다. 벤치에 앉아 한참을 물끄러미 바라보노라니 문득 오리 세 마리가 둥둥 떠서 헤엄치며 다가온다. 그들도 자유다. 그들이 연못을 자유로 만들고 있다. 그래, 역시 연못엔 오리가 떠야 제격이다. 오리도 한 마리면 안 된다. 세 마리가 좋다. 네 마리라서 둘씩 짝이 맞으면 재미없지. 한 마리는 짝이 없어야 팽팽하다. 문득 앞서거니 뒤서거니 세 마리가 뒤섞이며 야단이다. 짝 있는 녀석은 제 짝 지키려고 그렇고 짝 없는 녀석은 제 짝 찾으려고 그러는가 보다. 고요한 물 위에 파문 하나 없다가, 늦은 햇볕 내려와 늘어지게 하품하다가, 연못가 부들 끝에 앉은 나비 한 마리 끄덕끄덕 졸다가, 그예 오리의 절규를 듣는다. 꽥 꽤액 꽥꽥...

아하, 잠자긴 다 틀렸다. 흰 파도처럼 밀려오는 자잘한 생각과 물 위에 제 모습을 비추고 서 있는 소나무와 연못 둘레에 심어진 키 작은 나무의 잎새 사이로 부지런히 옮겨 다니며 지저귀는 참새 소리와 유모차에 아기를 싣고 느리게 걷는 새댁의 발걸음과 정자 위에 걸터앉아 무심한 눈길을 던지고 있는 노인과 군데군데 높이 세운 기둥 위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클래식 음악과 하늘에 떠 있는 흰 구름과 예쁜 꽃과 풀을 보며 끄떡 끄덕 졸음이 오던 차였다.

이 정적을 깬 것은 다름 아닌 짝 없는 오리였다. 그는 짝지어 멀리 달아나는 두 오리를 뒤쫓기 위해 황급히 물갈퀴를 움직이기 시작했고 그들보다 먼저 가서 앞길도 막고 옆길도 막고는 괴성을 지르며 긴 목으로 상대를 공격하고 있었다. 암컷 한 마리만 둘 사이를 이리저리 피해 다니느라 분주하다.  모든 동물의 세 가지 본능을 꼽으라면 식욕과 수면욕과 성욕이라는데 이들도 지금 성욕으로 발동되는 사랑싸움에 열을 올리고 있는 것이다.

어디 오리뿐이랴? 인간도 이들처럼 이것 때문에 그 긴 인생을 처절하게 다투는 것 아닐까? 때로는 하나뿐인 자기 생명을 걸기도 하고 더러는 상대를 없애려고 험악한 일을 벌이기도 한다. 교양과 지식으로 무장한 인간이 이 원초적 본능 앞에서는 무장해제를 당하여 민낯으로 서게 되는 일이 허다하다. 그런데 이 절체절명의 사랑싸움도 보는 이에게는 당사자가 갖는 격랑의 감정이 없고 다만 재미있는 구경거리에 불과한 것이니 참 웃기는 일이다. 오리 셋의 사랑싸움에 실눈 뜬 구경꾼만 히죽히죽 신이 났다. 얼핏 사람의 사랑싸움이 오리만도 못하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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