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혜련 사회복지사

[정혜련 사회복지사] 나는 심리적으로 또는 사회적으로 그도 아니면 경제적으로 고통을 겪는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직업이다. 직업이 직업이다 보니, 심리학과 사회복지학을 공부하고 이 분야에 대한 훈련을 계속 하고 있기에 무엇이 문제인지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보통의 사람들보다는 비교적 알고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내가 인간사의 희로애락에서 자유롭다는 의미는 절대 아니다. 나는 누군가의 얘기를 계속 들어주고 있지만 정작 내 얘기를 들어주는 사람은 없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항상 전문가 슈퍼비젼이나 동료 슈퍼비젼이 매우 중요하지만 프로그램과 상담에 쫓기다 보면 이 역시도 쉽지 않다. 최근 개인적으로 매우 힘든 일이 있어 가족들과 지인들에게 위로를 받았다.

그런데 그 위로라는 것이 결국 어떤 결론을 목표에 둔 것이었다. 그리고 그 목표는 내가 감정적으로 해결되고, 그 일에 대해 잊고 편안하게 사는 것을 의미한다. 나를 위로한 어떤 사람도 내가 애도의 기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았다. 아마 평소의 나를 생각하며 믿음이 있어 그럴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내가 그런 그들 앞에서 울 수도 힘들어 할 수도 없었다는 점이다. 오히려 내 고통의 깊이를 느끼는 것이 방해되었다. 사람들의 위로를 뒤로 하고, 아무도 없는 방에 홀로 앉는 순간 눈물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깨달았다. “내가 많이 슬펐구나!”, “내가 많이 힘들었구나!” 슬프고 힘든 일은 우리가 뛰어 넘어야 하는 허들도 아니고, 극복해야 할 과제가 아니다. 그 감정 자체로 존중받고 기다려주어야 한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타인의 속도로 내가 달릴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흔히 내가 어떤 일로 힘들거나 고민이 있을 때, 당신의 주변사람들은 한 마디씩 할 것이다. “나는 ~한 것도 겪었어.”, “너보다 힘든 사람들도 많아.” 때로는 당신 자신도 스스로에게 한 마디씩 한다. “내가 겨우 이거가지고.”, “남들은 잘 해결하는데, 나는 왜 이럴까?”, “빨리 털고 일어나야 하는데.” 기타 등등. 우리의 삶이 어떤 것에도 의지 하지 않고 살아가는 것이라면 이런 조언이나 다짐이 항상 유효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인간인 이상 어딘가에 기대어 살고 있고, 넘어지기도 하며, 맑기도 흐리기도 하다. 정현종 시인의 『비스듬히』라는 시를 보면 “생명은 그래요/ 어디 기대지 않으면 살아갈 수 있나요/공기에 기대고 서 있는 나무들 좀 보세요/우리는 기대는 데가 많은데/기대는 게 맑기도 하고 흐리기도 하니/우리 또한 맑기도 하고 흐리기도 하지요/비스듬히 다른 비스듬히를 받치고 있는 이여.” 라고 한다. 혹시라도 슬프고 지친 분들 중 이 글을 읽고 있는 분이 계시다면, 꼭 전하고 싶다. 상담가인 저도 슬프고 힘들 때가 있답니다. 제가 상담하는 사회적으로 명망 있고, 똑똑하고, 잘 살고 계신 분들도 그 내면은 지쳐있었습니다. 슬프고 지쳐도 괜찮습니다. 당신의 속도로 가도 괜찮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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