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동욱 충북도립대 교수

[조동욱 충북도립대 교수] 우리네 생활에서 가장 흔하고 또 한 편으로는 가장 친근한 문장이 하나 있다. 그게 바로 '삼겹살에 소주 한 잔 할래?'이다. 이 문장처럼 입가에 미소를 띠게 하는 문장도 찾기 어렵다. 물론 그 간 특별활동비 착착 받았던 국회의원들은 '일식에 발렌 타인 한 잔 할래?'일지는 모르겠지만, 내 수준에는 '삼겹살에 소주 한 잔 할래?'가 가장 맞다.

그건 그렇고 이 이야기를 왜하냐면 내 대학 선배 중에 71학번 선배님이 계신데 대기업 임원하시다가 퇴직하시고 요즘 아파트 경비를 하고 계신다. 이 분이 아침 6시에 아파트 경비 마치고 퇴근하시면서 나에게 카톡으로 다음과 같은 글을 보내주셨다. 내용인 즉, '막걸리 한 잔 할래?', 정말로 막걸리가 먹고 싶단 뜻이 아니니까 막걸리 안 땡기면 거절해도 됩니다. '맥주 한 잔 할래?', 만나서 가볍게 웃고 떠들잔 얘기니까 그럴 기분 아니면 거절해도 됩니다.

하지만  '소주 한 잔 할래?', 가벼운 기분일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힘들어서 일겁니다. 외로워서 일겁니다. 소주가 맛있어 먹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그걸 굳이 조그만 잔에 홀짝홀짝 따라 먹는 건 왜 이겠습니까? 이 쓰디 쓴 소주를 핑계 삼아 만나고 싶다는 뜻 아니겠습니까? 같이 놀자고 말하는 법을 잊어버린 어른들이라 그저 같이 소주 한잔 하자는 말로 대신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숨바꼭질이나 발야구를 할 수 있던 시절은 모두 지나가 버렸습니다. 젊음은 언제나 더 젊었던 날들에 바쳐지는 이름인 것도 같습니다. 너무 멀리 떠나온 세월. 우리는 이제 서로의 힘듦과 아픔을 온전히 느끼지 못합니다. 그러나 할 수 있는 건 소주 한 잔 같이 마셔주는 것뿐입니다. 외로운 잔 홀로 비우게 하지 않는 것뿐입니다. 괜찮다고..아무 것도 아니라고..다 이겨 낼 수 있다고..취해서 큰소리칠 수 있을 때 까지 만이라도 함께 있어 주는 것입니다.
                     
비록 어두운 밤 어느 갈림길에선가  비틀비틀 헤어지겠지만, 아침이면 쓰린 속과 흐릿한 기억 뿐 이겠지만, 그래도 외롭고 서글픈 밤에 쓰디쓴 소주잔을 함께 비워 줄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이 당시 가슴 한켠에 작은 위로가 되길 바랍니다. "소주 한 잔 할래?" 라는 말을 해 줄..말을 건넬 친구나 벗이 있다는 건, 참 ~ 인생을 잘 사신 겁니다. 그 친구 잃기 전에 달려가십시오. 지금 이 시간에도 쓰린 마음을 움켜쥐고 힘들어 하고 계신 분들. "쐬주 한 잔 할래?"

이 글을 쓰면서 내 주변에 정말 좋은 분들에게 '쐬주 한 잔 할래?'를 적게 한 것에 대해 반성해 본다. 또한 나에게 마음 주는 분들에게 아픔과 기쁨을 함께 하는 진정한 소주 친구였는지 돌이켜 본다. 무엇보다 오늘 집사람에게 '쐬주 한 잔 할래?'해 보고자 한다. 오늘따라 곤히 잠 든 집사람 모습을 보며 울컥 눈물이 흘러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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