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복선 화가
주황색 꽃이 산형태로 피어 우아하고 기품 있다. 잎은 칼춤을 추는 무희(舞姬)의 칼처럼 생겨 좌, 우로 호위를 받아 군자란이 꽃을 피웠다. 어쩌면 저리 예쁠까, 다가가 이리저리 눈을 맞추다 잎사귀 끝이 누렇게 말라 있는 모습이 거슬렸다. 나는 망설임도 없이 가위를 가지고 와 누런 부분을 싹둑 잘라냈다. 그제야 꽃도 잎도 싱그럽게 되살아났다. 다음 날 격자무늬 창 아래로 자리를 옮겨주기 위해 화분을 들어 옮기려다가 바닥에 말라있는 연둣빛 액체가 시선을 붙들었다. 순간 온 몸에 소름이 돋고 숨이 멎을 것 같은 통증을 느꼈다.

대학 3년인 큰딸이 휴학을 하고 서울에 가서 공부를 하고 싶다고 했다. 경솔한 딸이 아니었지만 사회가 어수선 해서 어떻게 하는 것이 딸을 위해 할 수 있는 선택인지 여러 날을 고민했다. 합격까지 2년 여의 기간을 잡고 경제적 뒷받침을 해주면 대학은 자신의 힘으로 다니겠다고 간곡히 청하였다. 현실을 쫓아 아이들을 내몬 것은 아니지만 그것으로부터 아주 자유롭지는 않았다. 좋은 꽃을 피워 주기 위함이라며 딸이 원하는 바람을 군자란 잎사귀 자르듯, 아무 거리낌 없이 잘라내곤 했었다.

꽃을 피우기 위해서는 주어진 조건과 환경은 적응하고 견디어야 하며 그것은 결과를 얻어내기 위해 스스로 지불해야할 댓가이기도 하다. 누렇게 말라버린 잎사귀의 끝도 꽃을 피우기 위해 겪어야만 했던 군자란의 시행착오였던 것을. 제 스스로 꽃을 피울 수 있게 하기보다 꽃을 피울 적정한 조건 속으로 밀어 넣고 딸의 바람을 싹둑싹둑 잘라내곤 하였으니…. 군자란이 흘린 푸른 눈물이 꽃을 피우기 위해 서울로 혼자 떠난 딸의 눈물 같다.

저작권자 © 충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