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향숙 수필가

[이향숙 수필가] 대기업이나 조합에서 직영하는 큰 마트에 밀려나 거리는 한산한 주말 오후가 되었다. 그렇다고 문을 닫을만한 배짱도 없으니 그냥저냥 시간을 보낸다. 그야말로 버텨내는 것이다. 요즘 들어 재미난 현상이 벌어진다. 까만 피부의 청년들이 무리지어 들어선다. 뒤를 이어 눈에 익은 동남아 친구들이 반갑게 인사를 한다. 중동 청년들은 익숙한 듯 두리번거림도 없고 희잡을 쓴 여인들이 수줍게 바구니를 든다. 우즈벡과 중국 사람들이 오가는 구멍가게 풍경이다. 가끔 야근을 하거나 휴무인 평일 날 아침부터 시장을 보러 오기도 하지만 보통은 주말에 약속이나 한 듯이 매장을 활기로 가득 채운다.

한국인보다 더 한국스런 말투에 식성을 갖은 이도 있지만 향수병에 젖어 마실 나오듯이 이곳에서 고향친구들을 만나는 이도 있다. 종교의 허락 안에서 먹을 수 있는 음식을 구하느라 상품의 성분을 분석하는 아랍인들을 보노라면 안타까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근처 대학교의 교환학생이나 교직원으로 근무하기도 하지만 주로 노동자인 그들에게 우리의 삶터를 빼앗긴듯하여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이도 있다. 하지만 그들이 없다면 3D업종은 말 그대로 폐업의 위기에 처해있다. 과거 우리나라 젊은이들도 독일이나 중동으로 외화벌이를 떠났었다. 덕분에 경제 성장된 현재를 살아가는 것이다. 그러니 그들에게 마음의 빗장을 열어 조금은 따뜻하게 대해주는 것은 빚을 갚는 것 인지도 모른다.

그들은 눈만 마주치면 유리처럼 맑은 눈으로 도움을 청한다. 자신의 나라에서 들여 온 상품이면 좋겠으나 비슷한 물건이어도 반가운 기색이다. 영어 울렁증이지만 타국에서 고생하는 그들에게 도움이 되고자 용기를 낸다. 도통 알아들을 수 없으면 휴대폰의 어플을 이용한다. 서로 만족 할 때까지 주고받다가 물건을 찾아내면 그 반가움은 말로다 형용하기 어렵다.

이십 여 년 전 처음 가게를 열었을 때만 해도 중국교포와 우즈벡, 중동쪽 사람 몇 명 뿐 이었다. 다행히 중국교포들은 한국말을 잘했지만 우즈벡이나 중동사람들은 만국 공통어인 바디 랭귀지로 설렁설렁 넘어 갔었다. 그때는 악덕업주에 시달리던 근로자들의 하소연을 자주 들었었다. 임금을 받지 못해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던 그들에게 흠집 난 과일을 건네곤 했었다. 눈물까지 보이며 고마워했었는데 잘 해결되어 고향으로 돌아갔는지 보이지 않는다.

인건비가 오르면 자연스럽게 소비가 늘어 경기는 풀릴 줄 알았다. 하지만 경기는 곤두박질치더니 도통 움직일 줄 모르는 매출로 한숨을 쉬고 있는 상인들은 수고에 비해 수입은 형편없다. 그래도 끈을 놓지 못한다. 좋은 물건을 저렴한 가격에 들여오려 하루에도 몇 가운데씩 도매시장을 기웃거리며 잠자는 시간마저 쪼개어 견디고 있다. 매일이 이겨내야 하는 전쟁이다. 그러다보니 국적불문하고 매장에 들어서는 이들이 감사할 뿐이다.

국제시장이 되어버린 주말의 매장에서 몸은 고단하지만 마음만은 조금 가벼워진 상인의 한사람으로 하루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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