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종학 전 진천군청 회계정보과장

[정종학 전 진천군청 회계정보과장] 계절에 관계없이 이따금 산행이나 여행을 하며 대자연의 풍광을 감상하고 있다. 해외여행 중 길가의 아름다운 풍광에 어울린 한 폭의 그림 같은 집에 감동의 여운을 남긴다. 국내의 도로변에서는 경관 좋은 양지에는 먼저 가신 조상이 자리를 잡고 계신다. 이제 긴 폭염에 시달렸던 여름이 서서히 물러나며 선선한 가을이 시작됐다. 처서가 지나며 논두렁이나 산소의 풀을 깎는 벌초문화가 열리고 있다. 조상 묘소의 정갈한 관리는 후손들의 당연한 몫이자 도리이다.

그 유래는 아마도 유교문화가 들어오면서 뿌리내린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조상에게 드리는 효와 감사의 표시로 보인다. 처서부터 시작해 음력 칠월 그믐까지 진행하는 게 우리사회의 통념적인 관습이다. 그런데 정작 유교문화의 본향인 중국을 여행하며 도로변에서 묘지를 선보는 일은 극히 드물다. 우리도 화장문화로 진화되면서 상당히 줄었지만 아직도 많은 편이다. 벌초 절정기 때는 온통 예초기의 웽웽 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퍼지고 있다.

우리 집안도 예외 없이 9대조 할아버지의 묘소까지 대대로 가꾸며 벌초를 해왔다. 한때는 잔치라도 치루는 듯이 많은 자손들이 시끌벅적했다. 그 당시는 우리 친족의 남다른 화목한 우애를 보며 이웃의 부러움을 사기도 했다. 우리뿐만 아니라 사회전반에 다양한 문화 확산과 유교문화의 퇴조로 청년층의 참석이 점차 줄어들고 있다. 뿔뿔이 흩어진 묘지의 관리가 불편해 새천년에 한 곳으로 이장을 했다. 그 덕분에 조금은 편해졌지만 친족의 결속력은 더 떨어지고 있다.

자손들 모두의 참석을 원칙으로 하지만 저마다 늘 바쁜 일상에 부득이 빠지는 경우가 흔하다. 질타를 하고 벌금을 매긴다고 해서 반드시 참석하는 것도 아니다. 예초기를 작동할 수 있는 기능보유자도 겨우 두세 명에 불과하다. 벌초를 진행하며 징그러운 뱀에 놀라거나 왕벌에 쏘이고, 눈에 이물질이 끼어 큰 고통을 겪기도 한다. 예초기를 도맡아온 조카들이 진땀을 흘리며 온몸을 소금에 절인 듯 보인다. 체력이 소진된 볼멘 목소리에 내 마음이 몹시 아프고 가슴이 저려온다.

다른 집안의 동향도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다. 공통점은 청년들이 눈에 별로 보이지 않고 장년층 이상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해가 거듭 될수록 남골 묘나 공원묘지를 선호하고 벌초대행도 빠르게 증가하는 추세다. 지금 우리는 고령화 사회와 노동인구 감소로 성장동력의 한계에 있고, 작은 지방의 소멸과 민족의 멸종까지 우려하고 있다. 암울한 인구재앙의 충격을 지혜를 모아 최소화해야한다. 앞으로 젊은 후손들의 벌초참여와 결집을 기대하는 것은 몽상에 불과하다.

우리 집안은 미래 준비의 고심 끝에 세대를 아우르는 공론으로 올해부터 벌초대행 체제로 전환했다. 벌초방향을 바꾸니까 미래를 예상하는 갈등의 벽을 넘어 더욱 화목해지고 있다. 무거웠던 마음도 한결 가벼워지며 귀뚜라미 애간장 끓는 소리도 멈추었다. 요즘 주말이면 도로와 산골짜기에 차량이 즐비하게 늘어져 있다. 집안마다 문화와 방법은 서로 달라도 조상을 섬기는 풍습은 끊임없이 이어가고 있다. 그 울림은 마치 조상과 만남의 기쁨에 박수치며 환호성을 울리는 것처럼 들려오고 있다. 시대 변화를 따라가는 벌초문화의 맥이 유유히 흐르는 강물처럼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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