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희 수필가·前 진천군의원

[김윤희 수필가·前 진천군의원] 한낮, 따가운 볕 속에서 가을을 준비하는 소리가 도란도란 들려온다. 알밤을 여물리기 위해 밤송이들이 마지막 햇살을 그러모으고 있다. 부지런한 몇몇은 벌써 벙글어 밤알을 쏟아낸다. 무던히 여름을 잘 이겨내고 들어차는 결실이 대견해 보인다. 최근 밤톨 같이 영글어가고 있는 아이들을 만났다. 자신의 의견을 또박또박 발표하는 아이들의 당당함이 흐뭇하고 신선하다.

베이비부머 세대로 시루 속의 콩나물처럼 떼로 자라온 입장에서 보면 상상도 못할 일이다. 아는 것도 제대로 말할 용기가 없어서 늘 수동적인 자세였다. 선생님과 눈이라도 마주치면 시킬까 봐 가급적 눈을 피하려 했던 기억이 새삼 떠오른다. 그때와 비교할 수는 없지만 수년 사이 교육계의 의식이 빠르고 다변화해가고 있음이 피부에 와 닿는다.

진천교육지원청에서는 지역교육발전공동체와 연계하여 2018년 '삶과 꿈을 키우는 진천행복지구'사업이란 이름으로 현재 활동 중인 마을교사들을 활용해 아이 중심의 교육에 힘을 쓰고 있다. 아이들은 이제 더 이상 학교만의 책임이 아닌, 지역과 함께 키워가야 한다는 데에 의견이 모아져 추진되는 일이다. 가장 보수적으로 여겼던 교육계가 문을 활짝 열고 함께 가자고 한다. 주입식 교육이 아닌, 사람중심의 인문학이 기대되는 시점이다.

때마침 옥동초등학교 3학년 한 교사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도란도란 역사 속 보물찾기-진천의 역사인물 통합 프로그램"을 해 보고 싶다는 요청이다. 지역 역사에 관한 3학년 사회 교과 과정과 맞아떨어지기도 했지만, 지역 인사를 활용할 생각을 한 교사의 의식이 새롭게 다가왔다. 진천에서 나고 자라, 우리 지역에 숨겨진 이야기를 찾아 글로 써가고 있는 필자 입장에서는 여간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학교 홈페이지를 열면 교장선생님 인사말이 없다. '옥동초등학교 교육공동체' 이름으로 환영을 한다. 이 또한 혁신적인 생각이다. 1922년 옥동공립보통학교로 개교한 옥동초등학교는 올해로 94회째 졸업생을 낸 역사 깊은 곳이다. 그런 학교가 아이들이 줄어들면서 졸업생을 겨우 11명밖에 내지 못한 지경까지 이르렀다. 그러다가 옆에 혁신도시가 생기면서 2014년 이전되어 학년 당 6학급, 한반에 30명에 이르는 규모가 되었다. 지금도 계속 늘어나는 학생들로 인해 다시 분반을 해가느라 즐거운 비명이다. 지역의 한 사람으로서, 아름답고 활기 넘치는 학교를 바라보는 일은 참으로 흐뭇하고 행복한 일이다.

"도란도란 역사 속 보물찾기"는 흥무대왕 김유신, 보재 이상설, 송강 정철, 이영남 장군 등 우리고장과 관련된 인물에 대해 알아보고 그와 관련된 소재를 직접 몸으로 체험해 보는 프로그램이다. 이는 내가 살고 있는 지역 역사인물 탐구와 그 정신을 이어 지역에 대한 사랑과 자긍심을 높이도록 하고자 함이다. 몸과 마음으로 느끼는 교육이다. "역사에 관심이 없었는데 알고 보니 진천에 훌륭한 사람이 많네요. 우리 고장을 더 많이 알고 싶어요"라는 반응이다. 더 바랄게 무엇이겠는가. 수업을 마치고 돌아오는 차 안까지 아이들의 목소리가 따라와 맴돈다. "옥 같이 빛내리, 옥같이…." 교가로 입을 모으던 아이들의 맑고 고운 눈망울이 미소로 번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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