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한솔 홍익불교대학 철학교수
[윤한솔 홍익불교대학 철학교수] 몇 년에 한 번씩 윤달이 드는 해가 되면 조상을 위해 묘를 이장하거나 화장을 하는 풍습이 있다. 윤달에 조상의 묘를 손대면 공덕이 많다는 뜻에서 비롯된 풍습인 듯하다. 그런데 불가에서도 윤달이 드는 해가 되면 ‘예수재(豫修齋)’를 올린다. 예수재란 사후세계를 위하여 살아있는 동안 자신이 스스로 공덕을 쌓는 천도재를 의미한다. 즉 예수재를 통해 계율을 지키고 수행을 잘 하게 되면 그 공덕이 밑거름이 되어 죽은 후에 능히 좋은 인연 처를 만나 좋은 곳에 태어나게 되는 것이다.
예수재는 뜻 그대로 다음 생을 위해서 ‘미리 닦는 것’이다. 단순히 형식에 그치지 말고 마음에는 선심(善心)을 심고 선행(善行)을 닦아 자신의 존재 가치를 확연히 깨달아 다음 생까지도 구제한다는 정신으로 예수재에 임해야 한다. 예수재를 마련한 참뜻이 우리가 죽음을 생각하고 깨달음의 씨앗을 심도록 인도하기 위함에 있다는 것을 결코 잊지 말고 참된 원을 심으며 인생의 진리를 배워 바르게 산다면 어찌 죽음을 겁내고 생사윤회의 고통을 두려워하겠는가? 오히려 도인들처럼 죽음을 옷 갈아입듯이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내생을 새로운 희망으로 정진의 터전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런 마음가짐을 가지면 생로병사(生老病死)의 고통을 이길 수 있으며 청정한 마음으로 수행한다면 자기 영혼은 능히 스스로 천도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이 바로 자력의 천도이다.
또 다른 천도 방법은 타력 천도인데 이는 타인이 죽은 자로 하여금 좋은 인연 처로 나아갈 수 있도록 빛을 비춰주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단순한 의식이 아니라 망자의 마음을 바꾸는 법문(法文)이다. 망자가 살아생전에 오욕락(재물욕, 명예욕, 식욕, 수면욕, 색욕)에 빠져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 속에서 한평생을 보냈으니 죽었다 하여 어찌 그 마음을 쉽게 바꾸겠는가? 자연 그 마음은 살아서와 마찬가지로 탐욕과 원한으로 늘 마음이 어둡고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망자(亡者)의 그런 어두운 마음(無明心)을 밝혀 주기 위해 행하는 것이 독경과 염불, 법문 등으로 구성되어 있는 천도재의 의식이다. 살아 있는 사람이 마음을 고쳐서 새 사람이 되듯 영가도 그런 법문을 듣고 참회하면서 깨달음의 세계로 나아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재를 지낼 때 충분한 음식을 마련하여 베푸는 것은 망인으로 하여금 재시(財施)의 공덕을 쌓도록 하는 것이고 좋은 글이 담긴 책을 공양하는 것은 법시(法施)의 공덕을 쌓도록 하는 것이다.
곧 법공양은 망인(亡人)을 대신하여 법문을 베푸는 것이므로 그 책을 받아 있는 사람이 그 뜻과 진리를 잘 이해하여 발심할 수 있도록 이끌어 줘야 한다. 재를 올린 후에는 ‘고왕경’이나, ‘보문품’ 등을 백 일 동안 독령 할 것을 권한다. 즉, 법공양한 책은 읽은 사람들이 발심을 할 때라야만 그 공덕이 죽은 자에게 참된 도움을 줄 수 있고 밝음을 가져다주어 무명심(無明心)에서 깨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죽은 자를 위하여 재를 올리는 동안은 반드시 가족과 친지들이 함께 경을 읽고 마음을 바르게 갖는 일을 잊지 말아야 망인이 바로 천도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