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일보 사설] 문재인 대통령은 방북 이틀째인 19일 전날에 이어 방북 두번째 정삼회담을 하고 ‘9월 평양공동선언’에 서명했다. 문 대통령으로서는 김 위원장과 3번째 만남이다. 두 사람은 지난 4월 27일 판문점 우리측 영역에 있는 평화의집에서, 5월 26일에는 북측 판문각에서 만났다. 공동선언문으로는 판문점선언에 이어 두번째 채택이다.

선언문은 한반도 전 지역에서의 전쟁위험 제거와 적대관계 해소, 민족경제를 균형적으로 발전시키기 위한 대책, 이산가족 상설면회소 설치, 문화·예술·스포츠 등 다양한 분야의 교류 확대를 1~4항에 기술했다.

전 국민의 최대의 관심사이고 국가의 안위가 달려있는 북한 핵무기 폐기에 관한 조항은 5항에 넣었다. 6항은 김정은 위원장이 서울방문을 수락했다는 내용이므로 사실상 비핵화 문제는 제일 끝에 다룬 셈이다. 실질적인 비핵화를 명확히 규정한 후에 대북 경제 지원이나 교류 확대를 허용해야 하는데 앞뒤가 바뀐 모양새다.

선언문을 구체적으로 뜯어보면 걱정거리가 한둘이 아니다. 우선 경협의 필수 전제조건이 되어야 할 비핵화 실천 의지가 모호하다. ‘미국이 6.12싱가포르 미북정상회담 공동선언 정신에 따라 상응조치를 취하면’이라는 전제를 깔고, ‘영변 핵시설 영구적 폐기와 같은 추가적인 조치를 해나갈 용의가 있다’고 했다. 이런 정도를 진정한 비핵화 의지라고 보기는 어렵다.

우리가 지원해야 할 동·서해선 철도와 도로 연결 같은 경협, 인프라 구축 업무는  ‘~하기로 하였다’고 기술해 실천 시기까지 명확히 한데 비해 비핵화 의지 부분은 ‘용의가 있음을 표명하였다’는 유보적인 표현을 썼다. 그것도 이미 용도 폐기된 것이나 다름없는 ‘영변 핵시설 같은 것’들을 폐기하겠다니 우습다.

일각에서는 김 위원장이 공동기자회견에서  “조선반도를 핵무기도 핵위협도 없는 평화의 땅으로 만들기 위해 적극노력하겠다”라는 귀절이 들어간 발표문을 읽은 것이 북한 지도자로서 처음으로 ‘비핵화’의지를 육성으로 들려준 ‘큰 성과’라고 추켜세운다. 하지만, 평양선언에 포함된 비핵화 관련 내용은 미래의 핵 폐기 용의 정도만 묘사했지 이미 보유한 핵무기는 어떻게 할 것인지는 언급이 없다.

특히 경협(經協) 확대를 기술한 2항에 ‘민족경제를 균형적으로 발전시키기 위한 실질적 대책들을 강구해나가기로 했다’는 부분은 40배 이상 차이가 나는 북한 경제를 남한 수준으로 균형을 맞출 때까지 계속 지원해줘야 하는 의무 조항으로 읽힐 소지가 크다. 남한이 피땀 흘려 무역해서 번 돈을 북한 경제 끌어올리기에 쏟아부어야 하는 의무가 발생된다는 의미다. 수백조원도 모자라고 수천조원이 될 수도 있다. 아무리 같은 민족끼리라고 해도 남한이 견뎌낼 수 없고 공멸할 가능성이 높다.

자칫하면 남한은 핵무기와 ICBM(대륙간탄도탄)을 개발하느라 껍데기만 남은 북한에 경제부흥을 이뤄주고 살찌워주는 이상한 처지에 빠지게 된다. 북한으로서는 핵무기는 그대로 보유하게 되고 낙후된 경제는 남한이 도맡아 발전시켜주게 된 셈이다. 이거야말로 핵무기 보유집단에 돈으로 평화를 구걸하는 핵 인질이 된 것이나 다름없다. 정부가 북핵 용인정책으로 선회한 것은 아닌지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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