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향숙 수필가

[이향숙 수필가] 스무 해 가까이 비만한 몸으로 살던 작은아이가 다이어트에 들어갔다. 지난해에도 가볍게 식사량을 줄이고 운동량을 늘렸지만 자신이 행복하지 않다고 중도 포기 했었다. 하지만 이번엔 독한 마음을 먹었나 보다. 단지 몸무게뿐만 아니라 원래의 근육량을 최대한 지켜내려 하루도 거르지 않고 운동을 한다.
 
한동안 아침식사는 아보카도를 곁들인 샐러드와 단백질 파우더를 저지방 우유에 타 마시고 점심은 일반식으로 했다. 저녁은 다섯 시 쯤 영양성분을 고려해 골고루 섭취했지만 소량이었다. 목표했던 몸무게보다 체중계의 눈금이 조금 더 내려가자 아침식사를 과하지 않은 일반식으로 바꾸었다. 조급하지 않게 패턴을 지키며 서서히 체중을 줄여 나가려 한다.

다이어트는 꼭 육체에만 있는 것은 아닌가보다. 생활에서도 불필요한 것은 하나씩 벗어 던진다. 나의 삶을 돌아보면 어릴 적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인지 어지간한 물건은 사용하지도 않으면서 버리지도 못했다. 저장강박증 환자처럼 쌓아두기만 했었다. 몇 해 전부터 필요한 사람에게 나누어주기도 하고 과감하게 수거함에 넣는다. 누군가 꼭 필요한 사람에게 새 생명을 얻기를 바란다. 물론 이웃의 손때 묻은 물건을 기꺼이 받아 감사히 쓰기도 한다. 쑥쑥 자라는 아이들의 옷이나 용품은 물려받아도 좋고 내려주어도 뿌듯하다.

물건뿐만 아니라 꿈에도 다이어트가 있나보다. 초등학생 때의 아이는 서울대학교나 하버드대학교를 간다든지 대통령이 되겠다고 말했었다. 세상을 먼저 살아 본 이로서 그것이 이루어지기는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만큼 어려운 일인 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부모 입장에서는 공연이 가슴이 두근거렸었다. 그런 꿈을 이루는 상상을 해보았었다. 우습지만 조력자로서 어떻게 교육에 도움을 주어야할까 싶어 책을 찾아보기도 했다.

중학생이 되면서 인류애가 아이의 가슴에 싹트더니 역사와 봉사하는 삶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기특한 반면 부모로서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나가는 바람이길 바라는 이기심 가득한 눈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 아이의 꿈은 수도 없이 바뀌었다. 입시를 앞두고 성적의 도면위에 습자지를 올려놓더니 밑그림을 따라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은 본인의 힘으로 먹고사는 일을 해야 하는 나무의 모습이었다. 개미 똥만한 밑그림을 돋보기로 확대해서 그리다가 움찔하더니 다시 가지치기부터 시작했다. 본인의 인생이 학생의 본분인 공부로 인한 결과물로 결정지어져 어쩔 수 없는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어느 쪽이든 황량하고 거친 바람이 분다.

아이는 다이어트를 통해 한계에 대한 극복과 도전정신을 기른다. 오랫동안 자신의 육체에 붙어 있던 불필요한 것들과 작별하고 가볍고 건강한 몸으로 새로운 세계에 도전하려 한다. 어설프게 끝났던 지난날을 거울삼아 부단히도 노력하는 모습이다. 결과는 성실한 과정 없이는 아름답게 다듬어지지 않음을 다시금 깨달았는지 식이조절과 운동도 열심이지만 책상에 앉아 있는 시간도 길어졌다. 세상을 대하는 성숙한 자세를 익히고 영혼을 살찌우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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