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아지가 닭 뼈다귀를 잘근잘근 씹고 있다. 그 광경을 한참 바라보던 난 어린 날의 기억이 떠올라 갑자기 콧날이 시큰했다. 희미한 호롱불이 켜진 부엌에서 닭 뼈다귀를 발라먹던 어머니의 측은한 그 모습이 불현듯 떠올라서이다.

추운 겨울 어느 날 철없는 나는 어머니가 차려준 밥상 앞에서 밥투정을 했었다. 밥상이라고 하지만 간장 한 종지와 멀건 죽이 고작이었다. 그때였다. 어디선가 구수한 고깃국 끓이는 냄새가 나의 코끝을 간질였다. 어려운 형편으로 멀건 죽만 연명하던 난 그 음식 냄새에 회가 동했었나보다. 느닷없이 어머니께 닭고기가 먹고 싶다고 졸랐었다. 그 다음 날 저녁이었다. 맛있는 음식 냄새가 온 집 안에 진동했다. 그것에 이끌린 난 마치 사냥 개 마냥 코를 벌름거리며 부엌 안을 기웃 거렸다. 부뚜막으로 급히 다가가 가마솥 뚜껑을 열어본 순간 나는 뛸듯이 기뻤었다.

솥 안엔 통통하게 살이 오른 닭 한마리가 보얀 국물 속에 누워있지 않은가. 그날 저녁 어머닌 닭을 푹 곤 국물과 함께 고기를 큰 양푼에 담아 방 한가운데 놓아주었다. 그것을 본 우린 일시에 달려들어 고기를 뜯기 시작했다. 사실 닭고기는 다리 두 개 뜯고 나면 퍽퍽한 가슴살만 몇 점 남을 뿐 고기는 별반 없다. 그러다보니 형제들은 닭다리를 서로 먹으려고 실랑이를 벌이기도 했었다. 입이 많다보니 닭 한 마리의 고기는 눈 깜짝 할 사이에 동이 났다. 밥상 위엔 고깃살을 발라먹은 닭 뼈다귀만 앙상하게 남았었다.

멀건 닭고기 국물까지 다 마셔버린 후에야 우린 어머니를 떠올렸다. 그제야 어머니를 찾았건만 어찌된 영문인지 집안에 어머니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고기가 먹고 싶던 차에 몇 점의 닭고기와 멀건 고깃국으로 배를 채운 우린 이내 하나둘 잠자리에 들어 깊은 잠에 빠졌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잠결에 요의를 느껴 자리에서 일어난 나는 화장실을 가기 위해 밖으로 나왔다. 그때 부엌에서 희미한 불빛이 새어나왔다. 부엌문 틈으로 안을 들여다보았다. 어머닌 부뚜막 앞에 쪼그리고 앉아서 우리가 먹고 버린 닭 뼈다귀를 마악 입안에 넣다말고 내 인기척에 흠칫 놀라는 표정이었다. 살점이라곤 전혀 없는 뼈다귀였다. 더구나 그것은 자식들의 침이 묻은 불결한 뼈다귀 아닌가. 어머닌 왜 그걸 먹고 있었을까? 그 당시 어린 맘엔 어머니의 그 행동이 괴이하기만 했었다.

훗날 돌이켜보니 어머닌 그날 일부러 자리를 떴었던 것이다. 자식들 고기 한 점이라도 더 먹이려고 당신은 입안에 군침이 절로 돌면서도 자리를 떴던 어머니. 그 닭고기를 자식들에게 먹이기 위해 남의 집 허드렛일까지 해야 했던 어머니였다.

지금 그 어머니를 위해 난 매일 하루 세끼 밥상을 차리고 있다. 헌데 요즘따라 어머니의 입맛이 수시로 변하고 있다. 나또한 어인일인지 음식의 간을 제대로 못 맞추고 있다. 어느 땐 국이나 찌개가 싱겁고 어느 땐 짜고 하여 어머니의 반찬 타박을 듣는다. 살림산지 벌써 수십 년이다. 그럼에도 음식 간 탓에 어머니의 불평을 들을 때가 허다하다.

밥상을 대할 때마다 이젠 어머니가 밥투정을 한다. 끼니마다 한번 밥상에 오른 반찬은 젓가락이 가지 않는 어머니를 곁에서 지켜보며 처음엔 난감 했었다. 매 끼니마다 어찌 일일이 반찬을 새로이 할까 고민이 컸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나의 이런 생각이 얼마나 불효막심한가. 어머닌 지난날 그 궁핍한 살림살이로도 무엇으로든 자식들 입맛에 맞춰 정성껏 밥상을 차렸었다. 요즘처럼 물질이 풍족하지 않은 그때 어머닌밥상에 오를 음식을 어찌 장만해 우리의 심신을 이만큼 키웠단 말인가. 그런 어머니를 생각하노라니 나의 이 번거로움 쯤은 얼마든지 감수 할 수 있는 하찮은 일임을 새삼 깨닫는다.

저작권자 © 충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