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종환 한국자산관리공사 대외협력위원

[황종환 한국자산관리공사 대외협력위원] 이제 기상관측 이래 가장 무더웠던 여름이 지나가고 가슴을 시원하게 뚫어주는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 가을의 문턱이다. 깊고 드넓게 펼쳐진 파란 가을 하늘이 눈부시게 아름답다. 장강의 물결처럼 잔잔하게 흐르는 한강에 내리쬐는 가을햇살이 어머니의 품처럼 포근하다. 우주의 섭리는 사람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모든 만물을 변화시킨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하지만 세속적인 욕망에 사로잡혀 자신 스스로 만든 복잡한 문제들이 삶의 고통을 배가하고 지속시킨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수필에서 소개된 소확행(小確幸)은 일상에서 느끼는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 또는 실현 가능한 행복을 추구하는 삶의 경향이다. 진정한 행복은 작고 사소한 것에서 느끼는 즐거움이라고 한다. 자신이 행복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은 특별하거나 거창한 데서 행복을 찾지 않는다. 일상에서 마주하는 평범하고 아주 사소한 일이나 취미생활을 통해 행복을 느낀다. 지난 추석에 4대가 모여 함께 명절을 지내는 가족들의 행복한 모습을 방영하는 프로그램을 우연히 보았다. 99세의 할아버지가 어린 증손과 손을 잡고 눈을 맞추며 천진난만한 웃음을 지으며 즐거워하는 장면에서 진정한 행복을 느낄 수 있었다.

필자는 아들 부부와 손자가 한 가정을 이루며 살고 있다. 요즘 같은 핵가족 시대에 3대가 함께 사는 특별한 행복을 누리고 있다는 생각으로 항상 감사한다. 명절을 지낸 후 가족과 함께 떠난 강원도 산골 하늘에 떠있는 유난히 선명하고 둥근 보름달을 오랜만에 볼 수 있었다. 산등성이 위에서 꽉 찬 보름달이 온 천지를 환하게 비추는 모습이 정말 아름답고 환상적이다. 세 살배기 손자는 달이 어디에서 떠올라 어디로 흘러가는지 몹시 궁금해 한다. 일순간 부끄러운 듯 잔잔한 미소를 띠며 구름 속으로 사라지는 모습이 신기하였을 것이다. 달은 계절이 집이고 구름이 옷이라는 표현처럼 포근한 고향집과 잘 어울려 보면 볼수록 마음이 편안해진다. 어느 누구의 어떤 소원이라도 다 들어줄 것 같은 넉넉한 추석 보름달이다. 많이 가졌든지 적게 가졌든지 간에 세상의 모든 생명들이 연속적 반복적으로 함께 누려온 달은 바로 삶의 맥박이고 소망이다.

명절 연휴 마지막 날 처음으로 아들과 함께 땀 흘리며 한강변을 달렸다. 벌써 바람이 차갑다는 느낌보다 지난여름 간절하게 기다렸던 시원한 바람을 마음껏 맞을 수 있어서 오히려 기분이 한결 좋아진다. 옆에서 달리는 아들의 거칠어진 호흡소리를 듣는 순간 속도가 저절로 늦춰진다. 장성한 아들이지만 너무 힘들어 하는 것은 아닌지 나름 걱정되지 않았을까 싶다. 달린 후 한강을 가로질러 멀리 보이는 남산을 배경삼아 환한 얼굴로 사진 한 컷 찍는다. 주변의 사소한 일상에서도 얼마든지 행복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새삼 느낀다.

행복이라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행복은 즐거움이라기보다 주관적으로 느낄 수 있는 사건이 없는 편안한 상태라고 할 수 있다. 행복은 만족과 즐거움을 느끼는 사람에 다를 수밖에 없다. 가족들이 모여 특별한 의미가 없는 시간을 보낼지라도 마냥 편안해질 수 있는 것은 서로가 말을 하지 않아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삶이란 사랑하는 법을 배우기 위한 얼마간의 자유시간이다’ 라는 말이 있다. 사는 것이 힘들 때 누군가로부터 위로를 받고 편안해지고 싶어 한다. 다가오는 한 마리의 강아지 눈빛에서 위안을 받을 때가 있듯 주위의 따뜻한 말 한마디나 눈길 한 점에도 위로 받기에 충분하다. 사람은 마음속에 창문이 하나씩 있다고 한다. 문을 활짝 열고 삶이 위로를 받아 행복해질 수 있기를 소망한다.

이 세상에 존재의 이유가 없는 생명은 없다. 어떤 경우에도 존재의 이유와 필요성은 분명하다. 다른 사람과 비해 조금 부족해보일지라도 결코 존재의 가치는 달라지지 않는다. 왜 존재하는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스스로 찾아볼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하다. 사소한 것에서 행복을 느낄 때 더 큰 행복을 찾을 수 있는 디딤돌이 되지 않을까 싶다. 욕망에 집착한 성공보다 일상의 소소한 것에서 행복을 찾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가족들과 함께 집 근처 공원을 산책하고, 손자의 사소한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주며, 아들과 한강을 달리면서 함께 호흡을 나눌 수 있는 순간 행복을 느낀다. 넉넉하게 비워진 작은 가슴에 가을햇살이 따뜻하고 환한 미소를 가득 채워주는 것 같다. 형형색색 물들어가는 단풍이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는 가을날에 미소 지으며 화폭처럼 펼쳐진 단풍나무 숲길을 걸어가는 모습을 상상하는 시월의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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