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태 건양대 교수

[박기태 건양대 교수] 가을은 우리의 영혼으로 다가온다. 갈색으로 농염해진 가을의 빛깔과 푸르른 하늘 그리고 밤새 잠 못 이루고 뒤척이게 하는 사색을 함께 데리고 온다. 그래서 살아 있는 것 모두가 눈이 부시고 세상이 홀연 듯 커 보인다. 하지만 우리의 언저리에 움츠리던 것들이 하나씩 하나씩 떠나가면서 우리를 까닭모들 상념에 젖게 하는 것이 또한 가을인 까닭에 가을은 우리의 영혼을 위한 계절인 것 같다.

이 가을에 나는 또 어디로 흘러가야만 하는 걸까. 해마다 가을이 오면 내가 한참을 잠 못 이루고 방황해야 하는 갈림길은 또 어디에서 찾아야 하나. 나는 밤새껏 시를 쓸 것이다. 잡다한 영화의 시나리오 나부랭이를 써 내려가며 내 존재의 정체성에 만족하기 보다는 한 편의 시로써 올 가을의 흔적을 남겨 보고 싶다. 그리고 오래된 앨범을 펼쳐놓고 옛 친구를 생각하며 친구에게는 그간의 안부를, 나를 버리고 떠나버린 옛 사람에게는 불쑥 안녕을 고하고 싶다. 지난 세월 지나친 자아의식에만 의존하지 않았는지, 행여 내 이미지의 조작에만 신경 쓰지 않았는지를 자성도 하면서...

기왕에 가을 병을 앓을 바에야 시인 월트 휘트먼(Walt Whitman)이나 로버트 프로스트(Robert Frost) 그리고 김수영이 그러했듯 풀잎처럼 그리고 풀잎에 맺힌 이슬처럼 젖고 싶다.

내가 김수영의 시 「풀」을 읽었던 때는 어느 해인가 가을 무렵이었다. 김수영 시인은 이 시를 쓰기 위해서 온몸으로 통곡했고 고통 속에서 시가 완성됐음이 분명하다. 「풀」은 그의 혼이 살아 움직이는 것 같아서 나에게는 커다란 환희였으며 그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그는 시를 통하여 우리에게 살아가는 방식과 사랑의 정의를 밝고 건강하게 그리고 정확하게 호소했다. 그래서 내가 느꼈던 그때의 감동은 아직도 나에게는 깊이 각인되어 있다. 가끔씩 내 자신이 초라해 지거나 괴로워서 사는 일이 버거울 때 그의 목소리가 들릴 것 같은 시 「풀」을 자그마한 목소리로 읊어본다.

눈이 부시게 푸르른 가을 하늘과 풀잎 하나가 황금빛 머리를 빗질하며 예리한 칼끝처럼 내 심장을 찌르는 그 무엇이 아무 것도 아닐 수 있는 그런 사실 속에서 나만의 색감을 느끼며 나만의 영혼을 보듬고 싶다. 고독한 나를 고독하지 않게, 슬픔을 슬픔이지 않게, 그리고 절망을 절망이지 않게 만드는 힘은 보이지 않는 무형의 길에서 비록 작가는 기억하지 않을지라도 한 편의 시를 만나는 길에서 영혼의 만남이 이루어질 수 있다. 이를테면 나와 김수영의 시 「풀」의 만남처럼.

「풀」이라는 시 속에는 질긴 인연의 끈이 우리 자신을 하나하나 붙들어 매고 연결해 놓을 듯하다. 그 무엇으로도 끊어버릴 수 없는, 그것이 비록 고통이나 슬픔의 끈이라 할지라도 놓아서는 절대로 안 된다는 심오한 인생철학을 그려내고 있어서 눈물겹도록 고맙고 내 자신이 성숙해지도록 채찍질을 해주는 듯해서 너무너무 감사함을 느낀다.

우리들 대부분은 기억의 오류 속에서 “시간이 없어서”, “고통이 싫어서”라는 변명을 조잘대는 데 너무나도 숙성되어 있다. 시인 김수영은 이러한 연약한 인간성을 핑계 삼아 우리를 드러내 보이는 기만을 싫어해서 「풀」이라는 시속에서 살아가는 상처가 깊으면 깊을수록 더욱더 성숙해짐을 그려내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도 해 본다. 이 결실의 계절에 거리에 서있는 수척한 풀들의 모습을 보며 그 모습의 의미를 알아낸다면 가을은 정말로 영혼앓이를 하는 우리의 몫이다라는 깊은 잠을 일깨우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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