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정숙 수필가

 

[육정숙 수필가] 빗방울 소리가 꿈길로 톡 톡 톡 앞발을 차며 걸어온다. 늦잠이라도 잘까? 끊임없이 귓전을 두드린다. 간신히 눈을 떠 시간을 묻는다. 다섯 시! 더 자고 싶은 육체는 움직이려는 의지조차 없다. 그러나 출근하는 가족들에게 간단하게라도 아침식사를 챙겨야 한다는 의무감에 꿈틀꿈틀 애벌레처럼 기어 나와 하루를 시작한다. 그제도,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아마 내일도 그럴 것이다.

그리곤 잠시 잊고 있었던 나의 출근길을 서두른다. 나는 슈퍼우먼이다. 늦은 출발이어서 핸들을 부여잡고 서둘러 달라고 액셀을 냅다 밟는다. 그렇게 오늘 하루도 긴장하며 시작 한다. 숨찬 하루의 시작에 동료들에게 커피 한잔의 여유를 선물 받았다. 이 시간의 커피 맛과 향은 온전히 나만을 위한 시간이다. 아주 짧지만!

하루의 업무를 마쳤다. 귀가 시간은 정해져 있지 않다. 퇴근시간이라고 정해져 있지만 들쭉날쭉이다. 이도 나름 묘미가 있다. 한결 같다면 이보다 더 좋을 순 없겠지만 살다보면 어쩔 수 없는 일이지! 이럴 땐 속도 깊고 넓다. 어떻든 종종 대며 귀가를 해서 주방으로 또 다른 출근을 한다. 하루에 두 번 출근, 경계 없는 퇴근도 두 번이다. 이 삶에 여인으로 태어난 축복이다.

그러나 요즘 세대 젊은이들은 남녀 구분 없이 집안일을 돕고 서로의 시간을 인정 해주며 자신들의 가치를 서로에게 부여 받고 있다. 이순의 고개를 넘어가는 우리에겐 대체로 꿈같은 일들이었다. 가끔은 이들이 부럽다. 젊은 시간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 것만 같을 때가 있다. 돌아보면 그 시대의 문화인만큼 나름 견디며 즐기며 지나온 시간이건만 뒤늦은 원망도 푸념도 해 본다. 이제는 내게 있어 가장 소중했던 보물단지들도 민들레 홀씨처럼 너울너울 내 곁을 떠나 새로운 보금자리에서 시간의 수레바퀴를 돌리고 있다.

그들이 떠난 자리 나는 나의 시간을 채우기 시작했다. 그동안 어딘가에 두고 찾지 못했던 내 이름 석 자도 그 곳에 데려다 놓았다. 모두 이구동성이다. 나는 오늘 시낭송. 나는 서예, 나는 생활체육, 나는 등산, 나는 기타 배우러, 나는 사진 찍으러 꼭두새벽에 출발해, 나는 골프! '그럼 우린 언제 만나? 다 같이 모여 식사하기도 힘들다. 다 같이는 힘들고 한 둘은 어차피 빠지니까 되는 대로 얼굴 보지 뭐!' 스마트 폰 문자로, 카톡으로만 우린 시도 때도 없이 만난다.

이순이 넘어서야 날개 하나 얻어 창공을 훨훨 날 수 있다는 것도 누구에게나 오는 축복이 아니다. 누군가에게는 꿈같은 일일 수 있다. 비가 차분히 내리고 있다. 모든 것은 마음으로부터 오는 것이니 내 마음 편한 것이 가장 근본이려니 싶다. 내 서 있는 곳에서 오늘도 조용히 차분한 하루를 시작해본다.

저작권자 © 충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