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혜련 사회복지사

 

[정혜련 사회복지사] 얼마 전까지 중고등학교 학생들이 쓰는 급식체의 뜻을 알아맞히는 것이 대세였던 적이 있다. 그러더니 이번엔 ‘급여체’라고 직장인들이 주로 쓴다는 말이 뉴스가 되었다. “부장님, 이번에 디벨롭하여(초기 내용이 부족하여 살을 붙이다), 올렸으니, 컴펌 부탁드립니다.”, “응, 업체와 어레인지(일정을 조율하다, 정리하다)한 건 어떻게 됐어?”, “네, 어레인지 되었습니다. 프리젠테이션 내용은 크로스체크(책임공동분담)해서 준비해두었구요.” “잘했네. 그리고 광고사에는 레퍼런스 전달(클라이언트의 눈 높이를 높이다, 자충수를 두다)했고?” “네, 사이즈베리해서(시안을 바꾸다) 다시 준비한다고 합니다.” “김대리, 아이데이션(해외성공사례를 찾다)만 하지 말고, 예전 선배들이 했던 것도 보라고!” “그리고 후려치려고(견적을 깎다)만 하지 말고 게런티 된(확실하게 보장하다) 것들을 꼭 컨펌하라고!”, “네, 부장님 드디어 킥오프(프로젝트 대서사시의 서막을 열다)한지 두 달 만에 끝을 봅니다.”

주로 외국어를 한국어발음으로 바꿔서 얘기를 하는 것이 많고, 이밖에도 A.S.A.P(보통 ‘아삽’이라고 하며, 가능한 한 빨리 급하게 라는 뜻), F.Y.I(For Your Information, ‘참고로’ 라는 뜻으로 메일과 문서에서 주로 쓰이는 표현인데요. 메일 끝에 참고할 내용을 보탤 경우 ‘다음의 정보를 활용하세요’라는 의미), TFT(Task Force Team, TF팀이라고 부르기도 하는 TFT는 회사의 일상적인 업무가 아닌 특별한 프로젝트를 수행하기 위해 각 부서에서 사람을 모아 팀을 만든 임시 조직) 등 매우 많다.

처음엔 웃으며, 공감하며 보다가 모아 놓고 보니, 뭔가 편치 않고, 민망하다. 산업, 예술 등 서구에서 들어온 많은 분야의 종사자들이 자신들끼리 의미가 통하고 편하다 보니 사용하기 시작한 것 같긴 한데, 나 자신도 반성이 된다. 중국 사람들이 외래어를 한자화 시켜 표현하는 可口可乐(콜라) 정도는 아니라도, 컴펌은 ‘확인’, 어레인지는 ‘조율’ 등으로 바꾸어도 얼마든지 의미가 통하는데 말이다. 물론 확인이나 조율도 한자어이기는 하나 그래도 이미 우리언어에 편입이 되어 있느니, 이질감이 덜하다.

가장 과학적이며, 세계에서 유일하게 창제과정이 정확하게 들어나는 한글을 문화유산으로 받은 민족으로서 반성은 좀 하고 가야하지 않을까 싶다. 아침에 출근해서 직장동료들과 달보드레(달달하고 부드러운)한 차를 마시며, 시나브로(모르는 사이에 조금씩)가까워져 있음을 알게 된다. 도시에서 포롱거리는(작은 새가 가볍게 날아오르는 소리) 소리는 못 듣지만, 미쁜(믿을 만 하다) 동료들과 띠앗머리(형제자매 사이의 우애와 정)를 쌓아간다. 퇴근 후에는 아름다운 10월 가을날 가족들과 늘솔길(언네나 솔바람이 부는 길)이라도 걸으면서 우리모두 라온하제(즐거운 내일)를 기대해본다. 우리말은 글로 모아 보아도 참 예쁘고 오롯하다(모자람 없이 온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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