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신원 前 한국청년회의소 중앙회장

[권신원 前 한국청년회의소 중앙회장] 오늘날 지구상에는 240여개의 크고 작은 민족 구성원들이 살고 있다. 이들 모든 민족 구성원들은 의사소통을 위한 나름대로의 고유 언어를 갖고 있다. 그러나 우리민족처럼 고유 언어와 함께 고유 문자를 가지고 있는 나라는 50개국에 불과하다.

그동안 세계역사에서 볼 때 발전한 국가들 모두 고유 언어와 고유 문자를 사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나라는 분명히 우수한 역량을 갖고 있는 국가임이 분명하다. 우리나라는 고유의 말과 글자를 통해 찬란한 문화를 꽃피우고 민족의 정기를 함양시켜 왔다.

국보 제70호로, 1997년 유네스코(UNESCO)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받은 훈민정음(訓民正音)은 언문이나 암글 등으로 천대를 받다가 민족의식의 각성과 더불어 국문과 국서로 표현됐으며, 주시경 선생에 의해 한글이란 이름을 얻었으며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고유 문자인 한글과는 달리 고유 언어인 한국어는 유엔(UN)의 6대 공식 언어에는 채택되지 못하고 있다. 이를 두고 세계적 철학자 하이데거는 영어가 생존적 세계화의 시대정신 속에서 한국어는 겨우 더부살이를 하고 있는 수준이지만 한국의 국력과 위상이 날로 높아지고 있어 유엔의 공식 언어가 될 가능성이 많다는 전망을 하고 있다. 한국어가 한류열풍에 따라 미국과 유럽 같은 선진국에서도 많이 퍼져 나가고 있고, 스탠퍼드 대학이 자랑하는 비교언어학자인 스티븐슨 교수가 세계의 문자 없는 부족에게 가르쳐야 할 것으로 한글을 꼽듯이 문자 없는 오지나라에도 한글이 전파된다면 유엔의 공식 언어로 당당히 자리를 잡는 날도 올 것이라는 분석이다.

하지만 이렇게 우수한 한글이 최근 들어 우후죽순 생겨나는 신조어와 줄임말들로 몸살을 앓고 있다. 한글 학자들은 ‘언어파괴’라는 표현까지 하며 심각한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폭풍눈물을 ‘롬곡옾높’, 법이 있어 상대를 용서한다는 ‘법블레스유’, 혼자 밥을 먹는 사람은 일컫는 ‘혼바비언’과 같은 신조어와 ‘갑분싸(갑자기 분위기 싸해짐)’, ‘복세편살(복잡한 세상 편하게 살자)’,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다)’ 등과 같은 줄임말과 더불어 비슷한 모양의 글자를 이용하여 엉뚱하게 표기한 ‘띵작(명작)’, ‘댕댕이(멍멍이)’, ‘커여워(귀여워)’ 등과 같은 표현들은 글자만 봐서는 도무지 그 뜻을 알 수 없다. 오히려 이런 단어들을 모르는 사람을 시대에 뒤쳐졌다며 ‘옛날 사람’으로 분류하기도 한다.

한글은 단순히 글자로서만 생각해서는 안 된다. 일제 강점기 때 창씨개명을 비롯하여 우리의 언어를 말살하려는 억압의 시대에, 한글은 말을 기록하는 수단을 넘어 우리 민족의 혼을 지키고 지금의 우리를 있게 한 절대적인 역할을 했다.

통신망의 발달로 말 보다는 메시지로 소통을 많이 하는 요즘. 편하고 재미있는 것도 좋지만, 정확하고 바르게 한글을 사용하는 노력이 절실히 요구된다. 이러한 작은 노력이 조상에게서 물려받은 전 세계가 인정하는 위대한 유산을 우리 스스로 지키는 자랑스러운 일이 될 것이다.

저작권자 © 충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