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원 전 언론인

[김종원 전 언론인] 산행하기 좋은 계절이다. 동네분들과 동네 산행에 나섰다. 좋은 풍광을 보면서 걷노라니 이런 저런 이야기가 오간다.  그중 한 토막. "저는 젊을 때는 산을 전혀 안 다녔어요. '내려올 건데 뭐 하러 올라가느냐'는 논리였지요.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인가 산행 재미에 푹 빠졌어요. 오히려 젊을 때부터 산행을 즐기지 못한 걸 후회합니다." 옆에 있던 분이 한마디 한다. "20대부터 산을 올랐으면, 지금 50대 중반에는 산행이 어려울 수도 있어요. 젊을 때 너무 심하게 등산을 즐겨서 지금은 산행을 못하는 친구나 지인들이 엄청 많아요" 그러자, 그 옆에 계신 분이 결론처럼 이야기 한다. "혹시 '인생총량법칙'이란 말 아세요. 아마도 등산도 그런 것 아닐까 싶어요. 평생 등산을 꾸준히 할 수 있으면 좋지만, 체력이나 시간, 여건 등이 갖춰져야 하니, 평생에 할 수 있는 산행 량이 정해져 있는 것 아닐까요" 맞는 것 같다. 유명한 등반가인 엄홍길 대장도 젊은 날 혹독한 산행으로 유명한 산악인이다.

중년인 그는 이제 혹독한 산행은 '그만'이다. 그가 산악인들에게 주문하는 내용이 있다. '산행할 때 스틱을 꼭 써라. 그것도 하나 아닌 두개를. 올라갈 때는 별 필요가 없지만 내려올 때는 꼭 쓰도록. 그래야 무릎 연골을 보호한다. 나이 들면서 스틱을 쓰는 게 아니라, 젊을 때부터 스틱을 써야 한다. 무릎 보호대도 젊을 때부터 써라. 특히, 내려올 때. 엄 대장 조언은 등산에만 해당 되는 것은 아니다. 살다보면, 너무 한꺼번에 모든 걸 소진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에 대한 경계다. 엄 대장과 강원도 비수구미 계곡을 함께 걸은 적이 있는데, 이곳은 그리 굴곡이 있지도 않았지만, 엄 대장은 스틱을 종횡으로 쓰면서 휘적휘적 걷는 모습을 보였다. 젊은 날 험산을 다니면서 에너지를 소진한 그에게 이제는 스틱으로 걷는 산행이 최적으로 보였다. 이제는 험산에서 내려와 산행을 즐길 수 있는 모습이 된 것 아닐까도 싶었다. '인생 총량법칙'.이 말은 사실 '열역학 제 1법칙'인 "세상의 모든 에너지는 형태만 바뀔 뿐 사라지거나 생성되지 않는다."는 것을 패러디한 것이다.

삶이 행복과 고통으로 이루어져 있다면, 그 총량은 누구에게나 마찬가지란 이야기다. 어려서 고통이 많았다면 나이 들어서 행복이 많고, 그 반대도 성립한다는 이야기다. 물론, 실제 법칙은 아니다. 어떤 사람의 삶이 고통으로만, 혹은 행복으로만 이루어져 있지 않다는 주장이기도 하다. '인생 새옹지마'를 말하기도 한다. 일방적으로 불행한 일도, 일방적으로 행복한 일도 없으니, 불행하다고 생각될 때 당당하고 행복하다고 생각될 때 옷깃을 한 번 더 여며야 한다. 하늘 푸른 이 계절에 등산이든, 낚시 든 힘껏 취미생활을 즐기시라. 다만 너무 한꺼번에 무리하지는 마시라. 너무 즐거우면 지속하기 어렵다. 오히려 즐거움을 조금씩 맛보면서 즐기시라. 100세 시대다. 무슨 계획이든 길게 세우고 길게 호흡하는 방향으로 힘차게 걸어가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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