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완보 충청대교수

[심완보 충청대교수] 얼마 전 대학동호회 SNS에 1년 후배가 다음과 같은 글을 올렸다. "대학원 졸업 후, 31년 생활했던 직장생활을 마감했습니다. 홀가분하네요. 몇 달 쉬면서, 몸도 만들고, 향후를 계획하려고 합니다. 이제 시간도 많으니, 뵙는 기회가 많기를 기대합니다." 후배 말에 따르면 1년 전 업무, 회식 등으로 바빴었는데, 술이 깨어도 말이 어눌한 느낌이 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동네 신경 정신과에 갔는데 당장 대학병원으로 가라고 했고 정밀검사를 거쳐 최종 뇌암 판정을 받았다고 한다.

급하게 수술을 한 후 여러 차례의 방사선치료와 약물 치료 과정을 거친 후 다행히 치료가 잘 되어 회사에도 출근할 만큼 많이 호전되었다. 하지만 몇 달 전에 작은 점 크기의 3개의 암이 다시 발견되어 방사선 치료로 제거했다는 소식까지 들었다. 아마도 경기가 안 좋아지는 상황에서 회사에 다니면서 병원을 자주 다녀야 하는 것도 회사에 미안하기도 하고 회사를 계속 다니면서 업무에 집중하다 보면 아무래도 스트레스가 누적되어 치료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받게 되어 그리 결정한 듯싶다.

평소 사람 좋고 선후배로부터 두터운 신망을 받던 친구라 많은 사람들이 위로의 글을 올렸다. "31년 동안 가족과 조카를 위해 불철주야 수고한 친구에게 아낌없는 갈채를 보내며, 이제부터는 쉬엄쉬엄 인생을 즐기며 살길 바란다." "경험해 본 바로는 새로운 세계가 열립니다." "직장생활 30년 넘게 했으면 훈장감이 아닌가 싶습니다." " 한 템포 쉬어가십시오. 선배님을 위해 펼쳐진 아름다운 세상을 즐기세요. " "이제 인생 제2막을 위한 인터미션 타임이네요. 제1막보다 더 재미있는 제2막을 위하여!" 그 중 눈에 들어오는 평소 재치 있는 후배의 댓글이 하나 있었다. "형님~ 오랜 세월동안 고생 많이 하셨습니다. 그간 바삐 사느라 못 해봤던 일들이 형님을 31년 동안이나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하나씩 만나주세요. 오늘부터 1일입니다."

이러한 후배의 안타까운 소식을 접하고 얼마 전 SNS를 통해 읽었던 글이 생각난다. 세계적인 땅콩 생산지인 미국의 앨라배마 주의 한 소도시에 세워진 비석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쓰여 있다고 한다. "우리는 목화를 갉아 먹었던 벌레에게 깊은 감사를 표한다. 이 벌레는 우리에게 번영의 계기를 주었고 하면 된다는 신념을 주었다. 목화 벌레들이여, 다시 한 번 그대들의 노고에 감사한다."

본래 앨라배마 주는 목화가 주요 생산품이었는데, 1895년 목화 벌레 떼의 극성으로 기근과 실직의 아픔을 겪게 되었고, 주민들은 이 재앙을 이기기 위해 목화 대신 콩, 감자, 옥수수, 땅콩을 재배하게 되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목화를 심었을 때보다 땅콩 수확량이 엄청나서 오늘날 세계적인 땅콩 생산지로 발돋움 하게 되었다. 그곳의 토질은 목화보다는 땅콩을 생산하는데 더 맞았던 것이다. 우리의 뇌는 위기가 닥쳐야 특별한 비상회로가 작동하기 시작한다. 부디 후배도 지금의 어려운 상황이 인생을 좀 더 현명하게 살 수 있는 기회를 여는 열쇠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저작권자 © 충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