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웅 충북수필문학회 회장·수필가

[김진웅 충북수필문학회 회장·수필가] 요즈음, 높고 파란 가을 하늘을 바라보며 인생을 무지갯빛으로 살아가려면 눈으로는 내일을 보고 발은 오늘을 딛고 인생을 음미하면서 한 걸음 한 걸음 바로 보며 걸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살아가면서 모든 것을 바로보기(正見)는 결코 쉽지 않다. 오랫동안 정견에 대해 알고자 고심하다가 몇 년 전, 불교대학에서 강의를 듣고 알 수 있어 무척 기뻤다. 정견은 바르게 본다는 뜻이지만, 인간이 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음을 조심하라는 탐진치 삼독(貪瞋痴 三毒)에서 벗어나지 않고서는 정견을 얻기 어렵고, 종교를 떠나 누구에게나 많은 교훈을 준다. 바로 보는 것이 바른 삶의 시작이니…….

정견으로부터 여덟 가지의 거룩한 길(八正道)이 이뤄진다. 바로 정견, 정사유, 정어, 정업, 정명, 정정진, 정념, 정정이다. 이들이 중도로서 눈을 만들어주고, 앎을 만들어주고, 고요함과 명료한 인식과 원만한 깨달음으로 이끌어 준다. 분주한 일상생활 속에서도 정견은 매우 중요하다고 여겨진다. 바로보기를 못하럼 그릇된 견해와 대처로 인해 사립 유치원 비리·부정 문제, 지난 10월 7일 발생한 고양 저유소 폭발 화재 같은 많은 피해를 겪은 사례는 수없이 많다. 정견의 반대말은 사견(邪見), 즉 그릇된 견해다. 자칫 우리는 정견보다 사견으로 보기 쉽다.

정견은 이러한 사견에서 벗어나 모든 존재가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음을 말하는 무상(無常), 경험적으로 느낄 수 있는 감각적 고통 뿐 아니라 불만족이나 불충분함도 포함되는 고(苦), 영원히 존재하면서 개체의 정체성(正體性)을 보장해주는 실체가 없다는 무아(無我)의 진정한 의미를 알고, 진리로 믿고 행(行)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견이 이뤄지려면 크게 세 가지 덕목을 갖춰야 한다는 것도 알았다. 우리가 이 덕목들을 제대로 알고 충실하게 행한다면 개인이나 단체, 국가이든 큰 혁신과 알찬 성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첫째, 전견(全見)인데 주어진 대상과 관련된 모든 자료를 확보해 판단해야 한다.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못하거나, 장님 코끼리 만지기가 돼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둘째, 정해(正解)를 필요로 한다. 여건상 모든 자료를 확보할 수 없을 때도 바로보기를 포기하지 말고 실상을 바로 봐야 한다. 바닷물이 짜다는 것을 알기 위해서 다 마실 수는 없지 않는가! 한 방울의 바닷물로도 바다가 짜다는 것을 알 수 있고, 작은 자료 하나로도 전체의 정보를 알아낼 수 있다. 셋째, 정견은 직시(直視)를 통해 구현된다. 우리는 고통을 직시해야지 외면해서는 안 된다. 만약 죽음이 닥친다 해도 직시가 이뤄질 때 비로소 정견이라고 할 수 있다는 것도 깨닫게 된다.

여름 내 가뭄과 폭염에 시달리고 지쳤는데 언제 그랬느냐는 듯 제법 추워진다. 세월이 너무 빠르고 무상하다는 생각도 든다. 우리는 때로 어부의 그물에 갇힌 물고기처럼 어쩔 줄 몰라 한다. 삶의 애증과 희로애락(喜怒哀樂)이 우리를 가두고, 욕망이 빈틈없는 그물 속으로 우리를 몰아간다. 마치 불타고 있는 집 안에 앉아 있으면서도 깨닫지 못한다. 삶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지금 이 순간 우리가 바로보기(正見)로 살아가는 일이다.

저작권자 © 충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