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혜련 사회복지사

[정혜련 사회복지사] "내 명운이 부족하여 육년 고초를 겪고 다시 성은이 망극하사 곤위에 올라 세자와 왕자의 충효로 여년을 마칠까 하였더니 오늘날 돌아가니 어찌 박명지 않으리요. 그대 등은 나의 박명을 본받지 말고 성상을 모셔 만수 무강하라." 영잉군이 차시 팔세라. 손을 잡으시고 슬퍼 왈, "차이가 영특하여 내 지극 사랑하더니 그 장성함을 못보니 한이라." 위의 본문은 계축일기, 한중록과 함께 3대 궁중문학에 속하는 ‘인현왕후전’ 중의 일부이다. 작가미상이며 중인인 장희빈이 당대 최고의 양반가문 출신 중전을 내보내고 그 자리에 오르는 이야기와 숙종을 중심으로 장희빈과 인현왕후의 삼각관계, 남인과 서인의 대립을 둔 경신환국, 기사환국, 갑술환국 등 역사적인 사건이 숨 쉴 틈 없이 전개되어 드라마와 영화의 단골소재이다.

맨 처음 인용한 부분은 인현왕후 민씨가 유언을 남기는 장면으로 세자는 장희빈의 소생인 훗날의 경종이고, 연잉군은 사도세자의 아버지인 영조이다. 아름답고 수려한 문체와 당시의 구중궁궐의 이야기를 볼 수 있는 훌륭한 문학작품이나, 절대적으로 인현왕후 민씨의 입장에서 서술되어 사료적 가치는 없다. 되새겨 볼 점은 정작 피비린내 나는 정치참극을 일으키고 자신의 자식을 낳은 여성을 사약을 먹여 죽이고, 정실왕후를 생일에 쫓아낸 숙종에 대해서는 많은 얘기가 없다. 그러나 숙종실록에 보면 그의 모후인 명성왕후가 “주상(숙종)은 평소에도 희로(喜怒)의 감정이 느닷없이 일어나시는데, 만약 꾐을 받게 되면 나라의 화가 됨은 필설로 다할 수 없습니다.” 라는 구절이 있을 정도이니, 그의 심성을 짐작하게 한다.

조선의 숙종을 보면, 영국의 헨리8세가 떠오른다. 절대왕권에 대한 집착과 아들세습(아들인 에드워드 6세는 16세에 요절)에 대한 열망으로 자신의 캐서린 왕비를 쫓아내고 앤블린를 왕비로 만들었다가 단두대로 보내버린 왕이다. 로마교황과 결별하고, 영국성공회의 수장이 될 정도이며, 이 과정에서 죽어나간 사람도 한 둘이 아니다. 정작 태풍의 눈이며, 이 모든 드라마틱한 스토리의 장본인들은 슬쩍 빠지고 왜 여성들이 주인공이 되었을까? 절대 권력을 가지고 있던 숙종과 헨리8세는 그저 자신들의 역할을 수행한 ‘왕’으로 인식되고, 절대 요부(장희빈, 앤블린)와 절대 성녀(캐서린왕비, 인현왕후)만 왕의 사랑을 놓고 다투는 여자들로 남았다.

하지만 진실은 조선시대의 책임정치의 한 형태였던 붕당정치가 서로를 공격하며 죽이는 과정에서 숙종의 절대왕권강화의 도구가 되었고, 장희빈과 인현왕후는 각 세력에 속해 있던 상징이었을 뿐이다. 로마 카톨릭과 결별하고 영국성공회를 만들며 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종교전쟁의 와중에 헨리8세의 절대왕권은 성장했고, 밥 먹듯이 왕비를 갈아치운 이야기 안에 앤블린과 캐서린 왕비가 존재하는 것이다. 여자들이 나오는 얘기가 재미있긴 한데, 숙종과 헨리8세를 좀 직접적으로 조명한 드라마나 영화가 나올만한 시대도 되지 않았나 싶다. 반복되는 클리세를 넘어선 새로운 이야기가 궁금해지는 시대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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