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혁 장애인고용공단 충북지사 대리

 

[이진혁 장애인고용공단 충북지사 대리] 용비어천가 2장 첫 구절인 '불휘기픈남간'은 한글창제를 대표하는 말이다. 몇 년 전 이 구절과 관련 있는 드라마 '뿌리깊은 나무'를 봤던 기억이 있다. 말하고자 하는 바가 있어도 마침내 그 뜻을 펼칠 수 없는 백성들을 위해 한글창제를 위해 힘썼던 한국사 최고의 명군 세종의 모습이 인상 깊었다. 우리에게 좋은 모습으로 기억되는 세종의 시대에서 과연 장애인들은 어떻게 살았을지 궁금해졌다.

조선시대에선 장애를 질병 중의 하나로 여겼다. 세종 14년(1432년)에 장애인과 그 부양자에게는 부역과 잡역을 면제, 즉 병역을 면제해 준 기록이 있다. 또한 세종 16년에 관악기, 현악기를 다루는 시각장애인 중 천인은 재주를 시험해 잡직에 중용하도록 했다. 그 외에도 점복사(점 보는 사람), 독경사(경문을 읽는 사람)라는 장애인을 위한 전문직 일자리를 만들어 냈다. 장애인을 학대하는 백성에게는 가중 처벌하는 '엄벌제도'를 시행하기도 했다. 과거 장애인을 천시했던 서양과 달리 장애인의 차별을 제도적으로 막고 장애인의 자립을 위해 능력에 따라 중용한 것은 600년이 지난 지금도 본받을만한 태도라 생각한다.

필자는 충북지역의 다양한 사업체와 장애인 구직자를 연결하는 업무를 하고 있다. 얼마 전 전기부품 제조업체에 청각장애를 가진 중증 여성 장애인을 추천한 경험이 있다. 청각장애인을 추천한다는 말을 건네자 사업체 담당자는 "의사소통이 안돼서 어려울 것 같아요.일하다가 사고라도 나시면..." 이라는 부정적인 답변을 해왔다.

하지만 그 장애인은 10년 동안 반도체 제조업체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어 추천한 업체의 일은 충분히 하실 수 있는 분이었다. 사업체 담당자에게 다시 건의해 면접을 진행했고 현재 그 분은 그 업체의 전기제품 검사공정에서 업무를 성실하게 수행하고 있다. 처음에 채용을 꺼렸던 사업체 담당자도 "이렇게 잘해낼 줄 몰랐다"며 한 명 더 구인하겠다는 의사도 보내왔다.

그러나 위 사례처럼 면접 볼 기회를 제공하는 사업체는 흔치 않다. 많은 사업체들이 장애인에 대한 막연한 편견으로 중증 장애인을 고용하기를 꺼리는 경우가 적지 않다. 구직 장애인들의 경력 및 능력을 알고 있는 공단 담당자로서 안타까운 일이다. 본인들의 능력을 발휘하기 전에 이미 선입견으로 인해 취업 기회조차 잡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장애인고용에 대한 선입견을 해소하기 위해 정부에서는 지난 5월 29일부터 장애 인식개선 교육을 법정 의무교육으로 지정했다. 모든 사업주와 직원들은 연 1회, 1시간 이상 필수적으로 인식개선 교육을 받아야 하며, 미이행시 사업주에게 300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 라는 말처럼 장애 인식개선 교육은 장애인에 대한 시선을 불가능에서 가능으로 바꿀 수 있는 한 걸음이라 여겨진다. 이런 한 걸음들이 모여 장애인 고용에 대한 편견을 극복하는 천리 길이 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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