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옥자 수필가

[한옥자 수필가] 햇빛에 얼비치는 단풍은 현란했다. 아름다움에 매료된 사람들은 탄성을 질렀으나 필자는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알맞은 가을바람이 휙 불었다. 겉옷도 벗었다. 일교차가 커지면서 초겨울에나 입어 마땅한 옷을 입었으니 땀나는 것이 당연했다.

‘해님이 세상을 따듯하게 비추고 있었어요. 그때 심술쟁이 바람이 달려와 해님에게 말을 걸었어요. “나 바람은 온 세상을 꽁꽁 얼게 할 수 있어.” 바람은 공연히 해님에게 싸움을 걸었어요. “넌 언제나 자신만만하구나. 우리 누구의 힘이 더 센가 겨루어 보는 게 어때?” 해님이 말했어요. 그때 마침 한 나그네가 외투를 입고 지나가고 있었어요. “저 나그네의 외투를 벗겨 보는 것이 어때?” 바람이 말했어요. “좋지.” 바람이 먼저 한입 가득 공기를 들이마셨다가 힘껏 내뿜었어요. “어? 갑자기 웬 바람이지?” 나그네는 바람이 세게 불자 외투를 더욱더 꽁꽁 움켜쥐었어요. 바람이 이쪽에서 휭! 저쪽에서 쌩~ 나그네는 외투 깃을 더욱더 꼭꼭 잡을 뿐이었어요.

“후유” 바람은 기운이 쑤욱 빠졌어요. “심술쟁이처럼 그런다고 되는 건 아니지.” 해님이 여유를 부리며 말했어요. 해님은 나그네를 향해 방긋방긋 웃었어요. 그러자 따듯한 햇살이 나그네의 등으로 비추었어요. “아, 따뜻하다.” 나그네는 움츠렸던 어깨를 활짝 펴고 꼭 붙잡고 있던 외투 깃을 놓았어요. 해님은 조금씩 더 따가운 햇빛을 나그네에게 내려보냈지요. 나그네의 얼굴에는 땀이 송송 맺혔어요. “날씨도, 참. 이렇게 변덕스럽다니.” 그렇게 말한 나그네는 외투를 벗었어요. “내가 이겼는걸!” 나그네의 외투를 벗도록 한 해님이 내기에 이겼어요. “우리의 내기 때문에 저 나그네가 힘들었으니 네가 가서 땀을 닦아 주는 건 어때?” 그 후로 바람은 지나가는 나그네가 흘리는 땀을 시원하게 닦아 주었답니다.’

부키의 동화나라에서 발행한 이솝우화 ‘해님과 바람’의 e북의 글이다. 어느 대목도 뺄 수 없어서 모두 옮긴다. 그리스 시대의 우화 작가인 이솝의 작품으로 간주하는 이 우화는 2,600년 동안 지식과 삶의 철학이 함축된 인류의 고전으로 어린이 교육에 꾸준히 사랑받고 있다. 동물의 의인화를 통해 전해주는 지혜가 세월이 아무리 많이 흘러도, 어린아이뿐 아니라 어른의 인생지침서로도 손색없어 책 읽기가 집중되지 않을 때면 즐겨 읽는다.

사설 유치원에 이어 어린이집도 점검을 할 예정이라고 공지하자 20여 명 규모의 어린이집을 운영하던 원장이 자살했다는 뉴스가 전해진다. 습성에 젖어 죄의식조차 없는 대다수 원장에 비하면 양심적인 사람이다. 유치원의 비리를 폭로한 국회의원에게 중앙일보는 '똘끼' 때문에 유치원 폭로? 박용진 "나도 무서웠다", 라는 제목으로 기사를 내보낸다.‘똘끼’는 원칙과 신념을 깎아내리려는 언론의 단어 선택이며 국민에게 부정적 시각을 심으려는 의도가 다분하다. 혹자는 적폐 청산에 대해 이제 그만했으면 좋겠다고 하는데 구석구석이 썩고 병든 암울을 그만두라니. 필자도 비속어로 구시렁거린다. ‘싸놓은 똥이 너무 많으니 치우는 시간도 길어지는 게지.’

강제로 옷을 벗기려는 바람 나라가 아니라 스스로 옷을 벗게 하는 해님 나라가 되어야 한다. 외투 깃을 잡고 집착하기보다 선뜻 외투를 벗어 나그네의 땀을 닦아주는 화합이 필요하다. 그러고 보니 비리 사학 재단의 엄벌을 꾸준히 주장해온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내정자를 기를 쓰며 반대한 것은 꼼수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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