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피니언 > 목요사색
의좋은 형제 이야기정우천 입시학원장
충청일보  |  webmaster@ccdailynews.com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8.10.31  13:59:29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구글 msn
   
 

[정우천 입시학원장] 어떤 일을 처리하면서 마음이 편해지는 때는 두 경우인데, 원하는 대로 일이 잘 마무리됐을 때와 더는 어찌해볼 수 없다는 것이 확인돼 포기할 수밖에 없을 때가 그것이다. 마치 수학적 문제의 해결을 확실한 해답을 찾거나 해답이 없음이 증명되었을 때로 보는 것과 같다. 농경 국가의 오랜 전통을 가진 나라에서 추수가 끝난 이즈음이 그런 때가 아닌가 싶다. 풍성하게 수확한 이는 그대로 편안할 것이고, 변변찮게 수확한 이는 이제 다음 해를 기약하며 내려놓을 수밖에 없어, 그 '어찌할 수 없음'이 주는 편안함이 그렇다. 생산과 수확의 경제행위가 끝나고 나눔과 분배의 경제행위로 넘어가는 때가 이때이다.

추수가 끝난 이맘때의 들판을 보면 생각나는 동화가 있다. '의좋은 형제' 이야기이다. 한마을에 살던 형제가 서로의 형편을 생각해 밤새 상대를 위해 볏단을 옮겨 놓아 날이 밝으면 결국 낟가리가 똑같아졌다는 훈훈한 이야기다. 우애와 배려는 옛일이 되고 돈 때문에 의가 상하는 일이 비일비재한 이즈음의 세태를 반영하면 동화는 이렇게 바꿔야만 하지 않을까 싶다.

밤새 상대의 볏단을 자신에서 옮겨와 아침이 오면 밤새 자신의 이득을 위해 애쓴 행위가 보람도 없이 낟가리는 변함없이 똑같고, 불쾌감과 서로에 대한 불신만 남는 '의 나쁜 형제 이야기'로 말이다. 서로 가져가서 같아지든 갖다 줘서 같아지든 경제적으로는 아무런 이해득실이 없겠지만 두 형제의 행복감은 아마도 사뭇 다를 것이다.

심리학자로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대니얼 카너먼(Daniel Kahneman)의 '찬물에 손 넣기'라는 흥미로운 실험이 있다. 차가운 물에 손을 넣고 1분 후 손을 빼게 한 경우와, 같은 과정을 한 후 그 물의 온도를 1도 정도 올려서 여전히 차갑지만 약간 덜 차가운 상태에서 30초를 더 있다가 손을 빼게 한 후 두 경우의 고통 정도를 측정하는 실험이다.

고통의 총량은 오래 있은 쪽이 크겠지만, 실제 고통이 더 심했다고 느낀 쪽은 1분 만에 손을 뺀 쪽이었다. 실험은 고통의 총량은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오히려 경험의 끝에 대한 기억이 전체경험을 평가할 때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결론을 내린다. 마치 지지부진하게 진행되다 멋진 반전으로 끝난 영화가, 흥미롭게 진행되다 밋밋하게 끝난 영화보다 훨씬 더 좋은 영화로 사후에 기억에 남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마무리에 대한 기억은 전체 경험에 대한 기억을 좌우한다.

의좋은 형제의 이타적인 경우든 의 나쁜 형제의 이기적인 경우든 경제적으론 아무런 득실 없이 같은 결과에 도달했으나 어떤 경우에 두 형제가 더 행복했을지는 자명하다. 배려가 배려로 보답받았을 때는 기쁨이 배가 되었을 것이고, 이기적인 욕심이 상대의 이기심으로 제지받았을 때는 불쾌했을 것이다. 서로에게 경제적인 득실 없이도 배려와 나눔의 마음만으로 더 나은 만족감을 줄 수 있는 게 인간관계이다. 올해 겨울은 매우 추울 것이라는 소식이다. 따뜻한 마음이 따뜻한 겨울을 보낼 수 있는 연료가 되기를 바란다.

충청일보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