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종환 한국자산관리공사 대외협력위원

 

[황종환 한국자산관리공사 대외협력위원] 형형색색으로 채색된 병풍처럼 산하에 펼쳐진 단풍이 눈부시게 아름다운 자태를 뽐낸다. 비가 내린 후 가을은 더 빨리 깊어지고 점점 싸늘한 추위가 다가온다. 정말 세월이 유속처럼 빠르다는 사실을 절실히 피부로 느끼는 순간이다. 가을은 뜨거운 불길로 찾아와 세상을 오색 빛깔로 곱게 치장하고 찬란한 석양의 향연을 열어준다. 산책길 옆 마른 풀밭에 오롯이 피어난 꽃 한 송이가 어린아이처럼 마냥 기분을 설레게 하는 듯하다. 파란 하늘에 떠 있는 솜사탕 같은 뭉게구름과 어우러져 동심의 세계로 돌아가게 만들어주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이제 인생의 절반이 지났을 법한 시간이지만 다가올 인생의 가을은 어떤 색깔로 채워질지 궁금하다. 가을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소리를 들으며 상상하는 것도 나름 괜찮은 것 같다.

계절의 변화는 언제나 새로운 느낌과 신선한 감동을 안겨준다. 사계절은 계속 반복되지만 변화가 식상하거나 지루하다고 느낀 적은 별로 없을 것이다. 수 천 년 동안 거의 매일처럼 느낄 수 있는 부모님의 포근한 사랑, 가족의 따사로운 감정, 친구의 잔잔한 우정은 늘 새롭고 감동으로 다가온다. 이러한 감정은 바로 늘 누구나 절실히 바라고 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남다른 일이나 새로운 것을 떠올리고 실행하는 일이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세상의 변화에 적응하려는 시도는 때로는 엄청난 스트레스를 가져온다. 스스로 변화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아차리는 순간 부담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세상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해 언젠가는 나락으로 떨어질지 모른다는 두려움으로 몸과 마음이 불편해진다.

얼마 전 우연하게 꼰대 감별법이라는 글을 읽고 깜짝 놀랐던 적이 있다. 옛날에는 말이야, 회식 때 잔 돌리기, 후배가 묻기 전에 조언하기 등 전체 아홉 개 문항 중 세 개 이상 해당되면 꼰대라고 한다. 필자도 대충 헤아려보면 아마 세 개 이상은 족히 해당되지 않았을까 싶다. 통상 꼰대는 구태의연한 사고방식을 타인에게 강요하는 직장 상사나 나이 많은 사람을 지칭한다. 그래서 고집이 세고 말이 안통하며 권위적인 사람이라는 부정적인 이미지가 강하다. 가끔 가족이나 주변 젊은 세대들에게 꼰대로 비춰지지는 않을까 순간순간 가슴이 서늘해진다.

사랑은 귀 기울여주는 것이라는 영화 대사 한 구절이 떠오른다. 건성으로 듣거나 듣는 척만 하는 것이 아니라 눈을 맞추고 꼼짝없이 앉아 끝까지 들어주는 것이 사랑이다. 먼저 서로 눈을 마주치는 일이 사랑의 시작이다. 사랑의 실천은 끝없는 연습에서 나온다. 톨스토이는 예술은 사랑의 감정을 고취시키고 서로 결합시켜 행복을 향상시키는 인류의 수단이라고 하였다. 그래서 인생을 짧고 예술은 길다고 한다. 진정 소중한 생각은 맛있는 반찬보다 밥에 가깝다는 말처럼 감동하기 위해서는 참신한 발상보다 내재된 기본적 가치가 중요하다. 일상에서 꼭 있어야하거나 부족하게 느껴지는 가치는 무엇인지 누군가에게 지혜를 꼭 구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가장으로서 오롯이 삶의 무게를 혼자 짊어진 채 자식들을 위해 평생 남의 눈치를 보며 사셨을 아버지가 그리워진다. 정작 자신은 남의 눈치를 보며 살아왔지만 자식만은 절대 그렇게 살지 말고 인생을 즐기면서 살아가기를 바라는 아버지의 따뜻한 모습이 석양의 노을처럼 포근하고 따뜻하다. 지금까지 지나온 길이 눈이 시리도록 푸르른 길이었다면 지금부터 나아갈 길은 붉은 노을빛처럼 따사로운 길이기를 기대하는 마음이다.

대자연 속에서 고운 옷으로 아름답게 치장한 가을 단풍이 사람들에게 소박하고 확실한 행복을 가져다주는 것 같다. 삶의 향기가 물씬 풍기는 하루를 살아간다는 것은 축복이며 감사의 대상이다. 세대 간의 불통을 의미하는 꼰대라는 비속어로 중년층을 조롱하고 배척하기보다 그들의 지나온 삶의 노고와 아픔을 이해하며 넉넉한 가슴으로 따뜻하게 보듬어주는 것이 바람직스러운 일이다.

때로는 눈치가 없고 표현이 서툴러서 쓸데없고 불필요한 말로 가끔 마음을 불편하게 할지라도 자주 넘어지고 깨어지며 쌓아 온 삶의 경험과 지혜가 세상에 순기능적 역할을 하였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단순히 축적된 경험이나 지식만으로 세상의 변화에 맞추며 젊은 세대와 함께 공존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어깨에 짊어진 삶의 무게를 잠시 내려놓고 서로 눈을 바라보며 귀 기울여주는 사랑의 실천을 통하여 삶의 공간이 평안과 기쁨의 물결로 넘쳐날 수 있기를 간구하는 만추의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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