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태 건양대 교수

 

[박기태 건양대 교수] 어느덧 가을도 깊어져 우리의 가슴을 붉게 물들이던 단풍들도 우수수 지고 있다. 그래서일까? 가을의 풍요로움을 만끽하던 떠들썩함이 물러간 뒤의 썰렁함이 거리를 나뒹구는 낙엽들을 바라봄에 을씨년스럽기까지 하다. 지난 시간들의 추억을 남긴 채 낙엽이 진 자리, 마치 무엇인가 가슴을 저리게 만들던 것이 물러가고 갑자기 비어 버린 듯한 적막감은 그 흔하디흔하던 잡다한 소음들마저 오늘은 사무치게 그립도록 만든다.

사람들은 흔히들 “가을은 결실의 계절이라.”라고 상투적인 말을 읊어댄다. 하지만 이 상투적인 말 속에는 우리가 심오하게 감내해야 할 삶의 아쉬움과 애달픔이 내재되어 있음을 알아야 한다. 가끔씩 우리는 과거를 되돌아보거나 앞을 바라볼 겨를조차 없이 무작정 뛰기만 하면서도 막막하고 가파르던 어느 한 순간쯤은 미래에 대해 생각해 보았을 것이다. 그렇지만 지나치는 순간순간마다 일시적인 포만감에 빠져 허우적대지나 않았는지 반추해 보면, 단지 우리의 손바닥 속에 삶의 찌꺼기 몇 개 쥐어져 있을 뿐인데... ... 그런대도 마치 대단한 삶에 대한 실물대나 발견한 것처럼 박수를 치며 좋아하지 않았는지 반성해 볼 필요가 있다.

불현 듯 내 삶이 끝나지 않았다는 것 자체가 환희의 덩어리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나의 우울한 현실과 미래 사이에서 다시 그립고 때로는 불쑥불쑥 나를 일으켜 줄 내용들이 채워질 것이라는 생각에 눈물까지 나온다. 미당 서정주 선생은 「푸르른 날」이라는 시에서 “저기 저기 저, 가을 꽃 자리 / 초록이 지쳐 단풍드는데”라는 시구들로 꽃이 지는 것 자체를 몹시 안타까워했다. 화사한 빛은 발하던 여름은 가고 그 부풀린 초록 세상이 지쳐서 단풍으로 물들고 이제는 쓰러지려고까지 한다. 비바람에 지쳐서 꽃잎이 붉게 물들어 떨어진 그 자리에 애상의 꽃이 있어서 세상은 아름다울 수가 있었는데 초록이 지쳐 쓰러짐을 시인은 ‘어쩌나’하는 마음으로 삶의 아쉬움을 느끼려 하는 것 같다.

낙엽이 뒹구는 그 자리, 이미 꽃이 진 쓸쓸한 그 빈자리는 누가 와서 채워줄까? 기진해진 그 자리는 그 누가 와서 다시 채워준다고 해도 채워지지는 않을 것 같다. 그리고 이미 가버린 봄과 여름의 무성함은 채우고 채워도 텅 비어 있고 쓸쓸하여 허무하기까지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시름의 가을하늘은 그 끝을 알 수 없을 정도의 호수처럼 느껴진다. 마치 그 심연은 그 어떤 것으로도 구원받을 수 없는 우리네 삶처럼 그리고 때로는 그 삶을 ‘삶이란 이런 것이다.’라고 딱히 정의할 수 없기에 더더욱 안타까울 따름이다.

우리들 대부분은 가슴 속에 가을이면 싹을 틔울 고독의 씨앗 하나정도는 품고 잇을 것이다. 하지만 혼자서는 바람에 날리는 낙엽처럼 고독을 바람에 실어 날릴 줄을 모른다. 바람에 고독을 날리는 재미 그리고 영혼의 옷깃을 깊이 꼭꼭 여미며 알싸한 바람을 향유하는 재미. 이런 재미에 우리의 피와 살은 여윌지 모르겠지만, 우리의 정신은 맑아지고 살쪄갈 것이다. 아쉬움과 애달픔이 없는 곳에서 우리의 영혼은 자라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따라서 잎을 떨구어 내고 당당하게 서있는 나무들의 의미를 알아가면서 가을의 깊은 밤을 지새운다면 결실의 계절에 느끼는 아쉬움과 애달픔은 우리 의식의 잠을 깨우는 ‘호정(虎亭)’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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