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법혜 민족통일불교중앙협의회 의장

 

[김법혜 민족통일불교중앙협의회 의장] 새벽에 수영을 간다고 집에서 나간 엄마는 다시 돌아오지 못했다. 엄마를 숨지게 한 가해자는 친아버지였다. 추운 날 차가운 시멘트 바닥에서 끔찍하고도 비참하게 엄마는 숨지고 말았다. 아빠의 폭력은 20여년 전부터 시작됐다. 그럴 때 마다 자식들은 경찰에 신고해 봤지만 곧 풀려났다고 말했다. 보복이 두려워 처벌 의사가 없다고 했기 때문이다.  결국 아빠는 3년 전 엄마와 이혼했지만 그 뒤로 이어지는 것은 살해 협박이었다. 엄마는 4년간 이사만 6곳을 다니며, 휴대전화 번호를 10여 차례 바꾸며 숨 죽여 지내야 했다. 아빠는 집요하게 쫓아 다녀 동생을 미행한 끝에 엄마 집을 찾아와 흉기와 밧줄로 위협한 적도 있었다.

아빠는 "엄마를 죽여도 나는 우울증이 있으니까 감방에 가도 6개월만 살면 나오면 된다" 고 협박을 했다. 벗어날 방법은 없었고, 결국 비극으로 이어졌다.  딸은 아버지를 "사형시켜달라"고 국민 청원을 했다. 이 청원은 게시하자마자 많은 사람들로 부터 동의를 얻어 냈다. 100만 명 이상의 동의를 얻은 PC방 살인 청원과 이번 사건에도 큰  관심이 쏠리면서 심신미약자의 감형 기준을 재고할 때라는 국민의 법 감정을 보여줬다. 오죽하면 친 아빠를 처벌해 달라고 했을까?

우리나라의 현행 가정폭력법에는 피해자가 원치 않으면 처벌할 수 없는데 피해자 뜻과 상관없이 처벌하는 내용의 법 개정안이 국회에 올라 잠자고 있는 동안 이런 사건이 발생했다. 온라인의 여론에는 미흡한 경찰의 대응과 법규의 부재를 탓하고 있다. 수십 년 간 가정폭력에 시달리고 살해를 당하기에 이르기까지 피해자들을 사회가 보호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잘못이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비극을 막지 못한 것은 가정폭력에 대한 우리 사회의 대응 시스템에 커다란 구멍이 뚫렸다는 걸 의미한다. 지난해 여성긴급전화 1366에 걸려온 가정폭력 상담 전화는 18만건을 넘어서며 해마다 늘어나는 추세다. 외부에 알려지는 것을 꺼려해 어지간해선 신고하지 않는 걸 감안하면 훨씬 더 심각한 수준일 것으로 짐작된다.

그러나 폭행 정도가 중한데도 불구속 수사하거나 금방 풀어주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일시퇴거나 접근금지 등 재발을 막기 위한 임시조치나 법원의 접근금지명령을 어겨도 과태료 처분이 고작이다. 이래서는 가정폭력을 줄일 수 없다. 생명이나 신체를 위협하는 폭력에 더 이상 관대해선 안 된다. 가정폭력도 엄연한 범죄라는 인식이 확립될 수 있도록 가해자는 사회문제이자 중대한 범죄라는 사실을 일깨워 주기위해 엄벌하죄, 피해자를 보호하는 장치를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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