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윤 건양대학교 병원경영학과 교수

[안상윤 건양대학교 병원경영학과 교수] 1997년 발생한 IMF 외환위기로 인해 죽어 무덤에 묻혔던 호봉제 임금제도와 장기근속제도가 다시 부활하고 있다. 각종 공공기관을 중심으로 박근혜 정부 말기까지 추진되던 성과연봉제 도입이 무산되고 그 자리를 호봉제와 장기근속제가 다시 자리 잡고 있다. 이런 현상이 사기업에까지 영향을 줄 것 같지는 않지만 우리 사회 전반에서 이루어지는 인력관리의 내적 일관성이 깨짐으로써 가치관의 혼돈을 피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특히 국민의 세금이 투입되는 공공부문을 보는 만간의 시각이 더욱 부정적으로 변할 가능성이 높고, 그것은 공공과 민간 간에 차별의식과 갈등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날이 갈수록 끝이 보이지 않는 미중 간 무역전쟁으로 한국의 새우등이 터지고 있다. 경기가 본격적으로 하강국면에 접어든 것은 물론 실업자 수가 IMF 외환위기 이후 가장 많다는 통계도 나오고 있다. 신규 채용의 원천인 중소 제조업체 경영자들의 투자심리가 급격히 얼어붙고 있고, 공공기관들 역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로 신규 고용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 정부의 각종 경제정책마저 효과를 내지 못하면서 기대감을 갖고 지켜보던 국민들도 희망을 철회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20여 년 전에 폐기된 호봉제와 정규직화를 통한 장기근속제가 다시 살아나 사회 전반에 유행하면서 글로벌 경쟁 환경을 헤쳐 나가야 하는 조직들에게 큰 부담이 되고 있다. 조직에서 사람을 관리하기 위한 이들 두 가지 제도는 사람에게는 좋지만 조직에게는 불이익을 주고 심지어는 조직을 죽음에 이르게 할 수도 있다. 때문에 구미 선진국에서는 산업사회 초기부터 인력관리를 위한 제도로써 채택조차 되지 못했고, 인접국 일본마저 1970년대 이후 사회적 합의를 거쳐 폐기한 제도들이다. 구미 선진국에서는 조직이 경제적 어려움에 처했을 때 불필요한 인력을 해고함으로써 조직을 살리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가치를 우선으로 하고 있다.

기업을 비롯한 모든 조직은 환경변화를 헤쳐 나가면서 살아야 하는 유기체와도 같다. 돈을 잘 벌지 못하면 직원을 줄여 슬림화하고 생존을 도모한다. 이것이 안 되면 인건비 감당을 위한 부채를 떠안게 되고 결국에는 폐업으로 간다. 미국의 경우 경영이 어려워지면 재정이 감당할 만큼만 인력을 남기고 해고하는 것은 자연스런 관리방법이다. 기업이 체력을 회복하면 해고했던 직원들을 다시 불러들인다. 미국인들은 그것을 당연한 사회철학이자 기업윤리로 여긴다. 선진국에서 호봉제는 일종의 미신으로 인식된다. 왜냐하면, 그것이 뛰어난 인재의 채용을 원천적으로 봉쇄하여 조직을 쇠퇴하게 만드는 원인이라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이다.

경제부총리조차도 공공기관들의 임금제도는 직무급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공공분야의 임금제도는 호봉제로 회귀하고 있다. 일을 잘하든지 못하든지 같은 나이나 호봉이면 동일한 액수의 임금을 받게 된다. 인건비를 감당할 만큼 수익을 내지 못하면 돈을 빌리거나 찍어서 월급을 주려고 할 것이다. 이런 인력관리의 조건 속에서 온전하게 견딜 수 있는 사회는 없다. 앞으로 다가올 한국의 미래가 두려운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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