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란 변호사

[이영란 변호사] 필자는 학력고사 세대이다. 학력고사 당일의 시험 성적이 가고자 하는 대학과 학과의 합격 여부를 결정했기 때문에 모두가 학력고사 당일의 성적을 위해 노력하던 시대였다. 보통은 내신 등급이 좋은 친구들이 학력고사 성적도 좋았지만, 안타깝게도 내신 등급이 좋은 친구들이 학력고사 당일 컨디션 난조로 평소 실력발휘를 못하는 경우도 있곤 했다. 그와 반대로 평소 내신등급은 좋지 않았지만 학력고사를 평소보다 잘 본 친구들이 소위 명문대에 합격하는 일들도 종종 있었다.

그런데 요즘의 대학입학 전형방법은 학생부종합전형이나 특기자 전형 등 다양한 방식으로 학생을 평가하여 선발하는‘수시모집전형’과 수학능력평가시험의 성적이 주요선발 기준이 되는‘정시모집전형’으로 나뉘어 있으며, 현재는‘수시모집전형’비율이 월등히 높다고 한다. 평소 관심이 없어 잘 몰랐는데, 이번에 서울 모 여고의 시험지부정유출사건을 접하면서 알게 된 여러 가지 정보에 의하면, 어떤 학부모들은 명문대‘수시모집전형’에 대비해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 할 때부터‘스펙 관리’를 한다고 한다.

아이의 학업성적은 물론 각종 경연대회에서의 수상경력, 봉사활동이력 등등 소위 명문대 입학을 위해 필요하다는 여러 가지를 초등학교 단계부터 미리미리 계획을 세워 챙긴단다. 서울 강남 대치동에는 명문대 수시합격에 필요한 스펙을 초등학교 단계부터 설계해주는 컨설팅 업체도 있다는 이야기가 들려오니 별나라 이야기만 같다. 솔직히 그런 ‘스펙관리’를 누구나 할 수는 없다. 각자의 상황에 따라 그것이 수월한 소수의 학생도 있겠지만 대다수의 학생들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다.

과연 어떤 것이 ‘기회의 공정’이란 측면에서 바람직한 것일까 하는 의문을 가져보았다. 과거의 입시제도는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1년에 단 한 번의 시험기회가 주어지고 그 시험 결과에 따라 합격, 불합격이 결정되기에 부정행위가 개입될 여지가 별로 없었다. 또한 평소 내신등급이 다소 낮더라도 학력고사나 수능만 잘 보아도 소위 명문대에 갈 수 있는 기회가 누구에게나 열려 있었기 때문에 오히려 기회의 면에서만 본다면 과거의 대학입시 제도가 더 공정했을 수도 있겠다(물론 1년에 단 한 번 보는 시험 결과만으로 평가받는 것은 아주 큰 단점 중 하나이다).

아니면 1년에 단 한 번 보는 시험 성적보다는 평소의 학업성취도나 학생 개개인의 역량을 다방면으로 평가하여 선발하는‘수시모집전형제도’가 다양한 능력을 가진 학생들에게 더 많은 기회를 제공한다는 측면에서는 더 바람직할 수도 있을 것이다(단 수시모집의 전 과정이 투명하게, 그리고 모두에게 공정한 기회가 주어진 후 평가되었을 때의 얘기다).

어떤 제도든 장점과 단점 모두가 있는 법이다. 그러나 적어도 기회는 모두에게 공정하게 주어져야 한다. 기회조차 공정하게 주어지지 않는다면 어느 누가 그 결과를 공정하다고 받아들이겠는가? ‘교육’은“사회생활에 필요한 지식이나 기술 및 바람직한 인성과 체력을 갖도록 가르치는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활동”이라고 정의된다. 교육의 당사자인 학생들에게 기회의 제공 단계부터 불신과 좌절, 그리고 박탈감을 느끼게 하는 제도가 과연‘교육’에 적합한 제도인지 진지한 고민이 필요한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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