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우천 입시학원장

 

[정우천 입시학원장] 가을비 내리는 날 고향에 홀로 계신 어머니를 찾아뵈었다. 구십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위태롭긴 하지만 건강을 유지하고 정신도 선명해 어머니 홀로 생활할 수 있다는 게 참 행운이다. 어머니는 물론 간병 및 보호의 의무를 최소화할 수 있는 자손으로서도 흔치 않은 행운이다. 같이 어울리던 분들 대부분은 이미 세상을 떠났고 남은 분들도 정상적인 활동이 가능한 분은 이제 몇 분 남지 않았다.

창밖으로 대부분 잎을 떨군 채 앙상하게 몇몇 잎만 붙어있는 나무가 보인다. 아마도 이 비에 그나마 남은 몇몇 잎도 떨어질 것이고, 그러고 나면 가을도 또 이해도 끝이다. 봄에 같이 새잎으로 돋아났고 힘 솟는 푸름으로 여름날을 보냈으며, 더러는 햇빛을 더 보겠다고 경쟁하기도 하며 그렇게 함께 지내왔던 나뭇잎들이 이르든 늦든 이제 결국은 다 떨어져 땅으로 돌아간다.

운 나쁜 어떤 잎은 푸른 잎으로 때 이르게 떨어져 사라졌고, 이미 물기가 다 빠져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어도 살아있는 게 아닌 잎도 있으며, 고운 단풍이 들어 마지막을 장식하고 있으나 그마저도 머지않아 땅으로 돌아갈 나뭇잎도 있다. 어쩌면 어머니의 삶도 조금 더 늦게까지 붙어있지만 결국은 지고 말 잎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괜히 마음이 쓸쓸해진다.

사람의 삶이라는 게 동물적인 삶에서 식물적인 삶이 됐다가 점점 무생물같이 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태어나면서 지연을 맺고, 학교를 졸업하며 학연이 생긴다. 결혼과 출산 그리고 직장과 일로 더 넓은 인간관계를 맺고 삶의 영역은 점점 넓어진다. 살면서 맺어지는 이런저런 인연으로 삶은 점점 더 활발해지고 활동 범위는 넓어지다가 마침내는 정점을 맞는다. 예전과 달리 많이 늦어지긴 했지만 언젠가는 맺었던 인연을 하나둘 정리하며 활동이 점점 좁아지는 시기가 온다.

아마도 동물적인 삶에서 식물적인 삶으로 전환이 되는 시기가 이때일 것이다. 마침내는 활동성이 점점 줄어들고 몸은 도구에 의존하지 않으면 일상이 힘들어지는 시기가 온다. 피가 통하고 신경이 살아있던 치아가 무생물인 광물질로 바뀌듯 여기저기 기능을 못 하는 부분이 생기는 것도 이때이다. 결국은 자연의 섭리대로 진행해 온 곳으로 돌아가는 것이 생명 있는 모든 것의 숙명이다.

생명은 두 가지 형태로 소멸한다. 물기를 만나 부패하여 소멸하는 것과 물기를 잃고 건조하게 사라지는 소멸이다. 물기를 잃고 깨끗하게 소멸하는 것은 자연의 순리에 맞는 아름다운 소멸일 것이고, 습기를 만나 부패하며 소멸하는 것은 왠지 자연스럽지 못하다. 물기를 잃고 건조하게 주름 잡힌 얼굴로 나이 들어가는 어머니의 모습이 편안해 보인다. 그리고 그 마른 손으로 속주머니에서 60도 넘은 아들 생일이라고 꺼내주시는 때 묻은 지폐 몇 장은 가을비에 젖은 낙엽처럼 애잔하다. 자식은 부모의 등을 보며 살다가, 어느 때인가 방향이 반대로 바뀌고 그 후로는 부모가 자식의 등을 보며 살게 된다. 이제는 어머니가 내 등을 보며 사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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