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혜련 사회복지사

 

[정혜련 사회복지사] 존경하는 선배와 무심천을 산책했다. 세상사는 얘기에 알아채지 못했던 찬바람이 저녁 8시를 넘어가자 옷깃 사이로 숨어들어왔다. “저녁 먹었니?” 선배가 주머니에 제법 두툼한 옷차림에도 팔짱을 꼭 끼며 말했다. “뭐 좀 먹을까요?” 이심전심에 나는 얼른 받았다. 그리고 느닷없는 그의 메뉴 제안은 ‘새뱅이찌개’였다. 무슨 음식인지 감을 못 잡는 나에게 선배는 ‘민물새우찌개’라고 친절하게 말해주었다. 처음 듣는 음식이름에 호기심이 발동 했고, 쌀쌀한 날씨에 뜨거운 국물이 먹고 싶었던 나는 직감을 믿으며 흔쾌히 동의했다.

갓김치, 동치미, 부침개, 총각김치 등 맛깔난 반찬에 손이 춤을 추었다. 시간이 좀 지나니 새뱅이찌개가 보글보글 끓었다. 선배가 먼저 한 국자 먹음직스럽게 떠서 나를 챙겨주었다. 매운탕 국물보다는 부드러운 붉은색에 민물새우들이 담뿍 들어가고, 애호박, 감자, 무가 먹음직스럽게 어우러져 있었다. 그리고 이 맛난 음식에 화룡점정은 손으로 뜯어 넣은 수제비였다. 한 숟갈 떠서 김이 모락모락 나는 쌀밥에 수북이 넣어 입에 넣는 순간 따뜻함과 행복함이 혀끝을 통해 온 몸에 전해졌다. “할머니 음식이 생각나네요.”, “맛있다.”, “이거 된장 푼 거 같은데?”, “사장님 이거 된장 푼 거죠?” 나와 선배는 새뱅이찌개가 주는 즐거움에 곡조 들어간 노랫소리처럼 신나게 대화를 나누었다.

보통은 삼인분인 찌개를 둘이 깔끔하게 비우고, 한 무리의 손님이 빠져나가 한가해진 틈으로 사장님의 동안비법까지 전수받고 왔다. 집안 경조사 있을 때만 일을 쉰다는 사장님은 고운 얼굴로 얘기하셨다. “운동한다고 생각하고 일해요.” 선배는 사장님의 말을 듣자 나에게 나직이 속삭였다. “긍정적으로 일하시니 맛이 없을 수가 없지.”, “다른 사람들 같으면 저녁 장사 마무리 무렵에 달랑 둘이 들어와 집에도 못가고 짜증날 수 있는데 말이야.” 나는 말없이 끄덕였다. 부모공양하고, 자식 키우랴 일 년 내내 일 하시면서도 행복을 나눠주는 사장님께 인생을 배우며 우리의 저녁식사는 마무리 되었다.

집에 돌아와 새뱅이찌개가 뭔지 찾아보다 전국향토음식 충북 편 용어사전에서 발견했다. 된장을 푼 국물에 무, 애호박, 냉이, 미나리, 쑥갓을 넣고 끓이다가 수제비 반죽을 떼어 넣고 고춧가루, 다진 파와 마늘을 넣어 끓이다가 새뱅이를 넣어 살짝 끓인 찌개이며, 새뱅이는 ‘듬벙새우’라고 불리며, 전혀 오염되지 않은 깨끗한 산골 냇가나 청천의 저수지에 사는 민물새우로 보은의 회남, 괴산의 달천, 대청댐 지역에서 잡힌다고 한다. 충북의 향토음식이라니, 그래서 할머니 손맛이 났던 건가 혼자 추측하며 맛난 저녁식사의 기억을 다시 떠올렸다.

다음 날 출근해, 물어보니, 새뱅이찌개를 모두 알고 있었다. 너도 나도 좋아한다는 얘기에, 오늘 저녁에 새뱅이찌개 먹으러 가야겠다며, 어디가 맛있게 하는지 찾는 사람도 있었다. 벨기에의 극작가 모리스 마테를링크가 우리에게 던졌던 ‘파랑새’의 화두는 최근 나에겐 ‘새뱅이찌개’로 답해진 듯하다. 직장에서 속상했다면, 뭔가 일이 풀리지 않아 답답했다면, 가장 가까운 가족에게 속상한 분들께 조심스레 ‘새뱅이찌개’를 추천한다. “오늘은 새뱅이찌개 어때요?” 잠시 잊고 살았던 당신의 소중한 삶의 감각을 일깨워 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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