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정희 청주시 흥덕구 행정지원과 문화체육팀장

 

[임정희 청주시 흥덕구 행정지원과 문화체육팀장] 국가론은 사회의 권력구조를 정당화하기 위해 발전돼 왔으며, 국가의 권력은 개인의 착취로 이어지고, 개인의 본질은 타자가 돼버린다. 개인의 독창성과 주체성의 상실은 정치적·사회적 문제와 밀접한 관련이 있어서 현재까지도 수많은 사람이 독재자에게 자발적으로 복종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추종자들은 독재자를 즐겁게 해주기 위해 자신을 억압하고, 천성을 거부하며, 결국 자신의 불행조차도 군주를 향해서가 아니라 어떠한 저항도 할 수 없는 약한 존재들에게 악습을 반복한다. 결국 자신이 굴복하고 있으며, 자신으로부터 점점 소외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다.

정치는 힘이다. 인간사도 힘의 구조이다. 누군가는 누군가를 지배한다. 강자가 약자를 지배하는 방법은 신체 지배에서 정신 지배로 발전해 왔고, 정신을 통제함으로써 '자발적 복종' 상태에 이르렀다. 우리 시대의 자발적 복종을 이끌어낸 기재는 자본주의이다. 자본주의를 비판하면서도 우리 스스로 자본주의의 노예가 됐음을 모르는 경우가 많다. 자본주의의 예속 상태를 벗어나기 위해 우리 내부의 길들여진 욕망을 비판해 나가야 한다. 훈육된 자아에서 벗어나 진정한 해방과 자유를 만끽해야 한다. 머무를 것인가, 자발적 복종에 만족할 것인가. 결국 선택은 온전히 나의 몫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복종에 반대해야 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인간에게 자유는 그 무엇보다 소중하다. 자유를 잃은 인간은 노예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주변을 둘러보라. 놀랍게도 스스로 노예가 되고 싶어 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왜 사람들은 스스로 힘센 자에게 고개 숙이고 복종하려 하는가? 강한 자의 보호 아래 들어가면 우리는 과연 더 안전하고 행복할까?

쇠사슬에 묶인 코끼리나 고삐를 채운 야생마가 길들여지는 순간 달아나지 않듯이 이들의 처지와 우리의 현실이 얼마나 다를까? 노예로 살아가는 인민에게는 투쟁 욕구도 없고, 강인함도 없다. 소신을 잃고 윗사람의 눈치만 보게 된다면, 뭐가 옳고 그른지 따지기보다 어느 쪽이 나에게 이득이 될 지만을 계산한다면, 독재자를 추종하는 신하와 같이 몸과 마음을 주인 곁에서 떠나지 못하고 결국 자신의 본래 모습과 멀어진다면 과연 이런 삶이 행복할까?

노예도 일을 마치면 휴식을 취하며 자기 자신으로 돌아간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유인의 조건으로 '스콜레'를 꼽는다. 이는 '여가'라는 뜻이다. 여가는 시간적·경제적 여유가 있다고 해서 저절로 즐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회사형 인간'으로 살다 조직에서 밀려났을 때 넉넉한 시간은 '자유'가 아니라 주체 못 할 부담일 뿐이다.

개인은 자유롭기 위해 연습하고 훈련해야 한다. 나는 점점 자유로워지고 있는가, 노예로 변해가고 있는가? 조직 밖에서도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을 키우고 있는가? 자유인으로 살기는 쉽지 않다. 적어도 잠깐 숨을 멈추고 스스로 나의 주인으로 살고 있는지 끊임없이 자문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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