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혜영 서원대 교수

 

[황혜영 서원대 교수] 그리스 신화에서 나르시스 이야기와 메두사 이야기에는 공통적으로 물에 비친 인물의 이미지가 등장할 뿐만 아니라 물의 반사된 이미지는 이야기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나르시스는 그를 짝사랑하다 버림받은 요정 에코의 복수로 인해 네메시스의 저주를 받게 되어 연못에 비친 자기 자신의 이미지에 매혹되어 물속 이미지에 닿으려다 결국 목숨을 잃게 된다. 페르세우스는 메두사의 머리를 쳐다보는 사람은 누구나 돌로 변하기 때문에 방패에 메두사를 비춰가며 그녀의 머리를 베었으며 아내 안드로메다에게 메두사의 잘린 머리를 보여주고자 할 때도 '안전하게' 물에 반사된 이미지를 통해서 보여준다.

물에 비친 이미지는 나르시스나 메두사의 신화에서 이처럼 핵심적인 요소이지만 두 이야기에서 물에 비친 이미지는 상반된 속성으로 나타난다. 나르시스에게 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은 표면에 부유하는 반영이 아니라 물위로 모습을 드러낸 생생하게 살아 있는 실재이다. 카라바조Caravaggio는 <나르시스Narcissus>(1597-1599)에서 화면 거의 정 가운데를 가로지르는 선으로 물의 가장자리를 표현하여 현실과 수면 위가 상하 대칭이 되도록 나누고 있다.

화가는 물가의 나르시스에게는 환하고 밝은 톤으로 조명을 비춰주고 물에 비친 나르시스 이미지는 어둡고 그늘지게 그려 현실과 환영을 선명하게 구분하고 있다. 현실과 환영의 극명한 명암은 연못가에 무릎을 굽히고 앉아 상체를 깊이 숙인 채 물에 비친 자신의 이미지와 지그시 눈을 맞추고 그것을 어루만지려는 듯 왼손을 수면 위에 살포시 갖다 대고 있는 나르시스의 비극성에 안타까움을 배가시킨다.

반면 페르세우스의 신화에서 물에 비친 메두사의 이미지는 실재의 부재 혹은 원형의 상실을 폭로한다. 에드워드 번 존스Edward Burne-Jones의 <불길한 머리The baleful Head>(1885)는 페르세우스가 메두사의 머리를 들어 우물에 비추어 안드로메다에게 직접 메두사의 머리를 보지 않고 물에 비친 이미지로 메두사를 볼 수 있도록 해주는 순간을 포착한다. 이 이야기는 물에 반사된 메두사의 이미지에서는 실제 메두사의 저주 더 이상 위력이 없음을 암시함으로써 반사된 이미지는 실재와의 차이와 간극을 보여준다.

나르시스를 반영하는 연못이나 메두사의 머리를 비추는 우물은 그림 속 거울이나 창문, 액자와 마찬가지 역할을 하여 작품 속에 또 다른 틀이 도입된 구성을 의미하는 미자나빔mise en abyme 구성의 한 예를 보여준다. 이때 나르시스에게 물에 비친 이미지는 생생한 실재라면 물에 비친 메두사는 실재가 부재한 환영이라는 점에서 두 물의 반영은 이미지 상반된 본질을 알려준다.

이미지는 어원적으로 '재현한 것', '닮은 것'이라는 의미와 '보이게 하는 행위'의 이중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물에 비친 나르시스와 메두사의 모습은 이미지란 본질적으로 실재와의 차이를 드러내는가 하면 부재하는 실재를 보이게 해주기도 하는 모순된 양면성을 동시에 지니고 있음을 보여주고자 하는 미장센이 아닐까 싶다.

▲ (왼쪽부터) 카라바조Caravaggio, <나르시스Narcissus>(1597-1599, 110x92cm)/ 에드워드 번 존스Burne-Jones, <불길한 머리The baleful Head>(1885, 153.7x129 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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