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일보 사설] 대법원장이 관용차를 타고 출근하는 길에 근무처인 청사 바로 앞에서 화염병 습격을 당하는 사상 초유의 사건이 발생했다. 김명수 대법원장의 차는 순간 불길에 휩싸였지만, 주변에 있던 직원과 청원경찰에 의해 화재가 진압되고, 김 대법원장은 무사할 수 있었지만, 이 사건은 우리 사법부가 얼마나 불신의 늪에 빠져있는가를 웅변해준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용의자 남 모씨(74)는 현장에서 잡혀 경찰에 인계됐다. 경찰의 조사 발표에 따르면 강원도 홍천에서 돼지를 사육하는 남씨는 유기축산물 부문 친환경인증 재심사에서 탈락돼 정부를 상대로 민사소송을 벌였으나 3김까지 내리 패소하자 이에 불만을 품고 대법원장을 상대로 테러를 계획·실행한 것으로 밝혀졌다. 남씨는 3심 판결을 앞둔 지난 16일부터 천막시위를 벌여왔고, 최근엔 김 대법원장의 퇴근 차량에 뛰어들기도 했다고 한다.

국회의장·국무총리·대법원장 등 3부 요인 중 한 명인 대법원장이 화염병 테러를 당한 것은 헌정 사상 처음이다. 이에 앞서 1991년 6월 정원식 당시 국무총리가 한국외국어대를 방문했다가 학생들로부터 밀가루 세례를 받았고, 2009년엔 정운찬 총리가 행정중심복합도시(세종시) 취소 발언 후 연기군을 찾았다가 주민들로부터 달걀 투척 공격을 받은 적이 있었다. 대법원장에 대한 물리적 공격은 지난 2010년 당시 이용훈 대법원장의 차량에 보수단체 회원들이 달걀을 던진 이후 8년 만이다.

이번 사건은 사법부에 대한 극심한 불신을 대변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물론 사법부에 대한 국민적 불신은 한두해 전에 비롯된 것이 아니다. 역대 정권에서 사회 정의를 수호하는 마지막 보루가 되어야 할 사법부가 권력의 시녀로 전락해 정치적 사건이나 순수한 민주화 운동에 대해서 사법적 살인을 저지른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고, 일반 시민들이 불공정한 판결을 받았다는 인식을 가져온 사례는 무수히 많을 것이다.

그래서 지금으로부터 꼭 20년 전 영등포교도소에서 이감 중 탈출해 인질극을 벌인 지강헌이 “무전유죄 유전무죄”라고 외쳤을 때 사회는 큰 충격을 받았고, 이말은 국민들 사이에 오랜 세월동안 회자돼 왔다. 이번 사건의 용의자도 정의롭지 못한 판결을 받았다는 피해의식이 팽배해 있었을 것은 말 할 나위도 없다. 그의 판단이 옳든 그르든 사법부가 국민들로부터 이런 불신을 사게 된 것을 국민들의 잘못으로만 봐야 하는가? 무지몽매한 민초들만의 탓인가? 라는 물음에 당사자인 법조인들도 감히 “그렇다”고 답하기 어려울 것이다.

돈이 없어서 재판에서 즉효가 난다는 전관(前官·당해년도에 퇴직한 법조인 출신) 변호사를 사지 못해 억울한 판결을 받았다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다는 것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현실이다. ‘인맥이 없어서 이겨야 할 재판에서 졌다’는 인식이 사회 곳곳에 가득 차 있다면 우리 사회에 정의가 실현되고 있다고 볼 수 없다. 더구나 김 대법원장 취임 이후 지루하게 진행되고 있는 전임 대법관들에 대한 사법농단 사건 수사는 사법부 스스로 권위를 무너뜨리는데 크게 한 몫을 하고 있음이 틀림없다. 스폰서 검사, 정치 검찰, 무전유죄라는 용어가 사라질 때 진정한 민주화, 선진화가 이뤄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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