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희 수필가·前 진천군의원

[김윤희 수필가·前 진천군의원] 바람살이 점점 거세어져간다. 겨울이 깊어가는 현상이다. 온 몸에 찬사를 받던 단풍들과 싸잡혀, 11월이 뚝 떼어져나갔다. 나뭇잎이 하나둘 떨어져 나갈 때마다 우수수 비명을 지르기도 하고 휑하니 드러나는 몸매에 허우적이던 나무들이 세월의 바람을 서서히 받아들이며 옷을 모두 벗었다. 허울을 벗고 솔직히 드러난 모습이 외려 의연해 보인다. 겨울나무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도 저리 당당할 수 있는 건 아마 그래서일 게다. 마지막 한 장 남은 달력에 몇 안 되는 날들이 매달려 뒷마무리를 하느라 분주하다. 바지런한 여인들이 흩어져 날리는 시간들을 주워 모아 수필집을 엮었다. 어릴 때 감꽃목걸이 만들어 걸던 이들의 추억이 묻어난다. 평범한 주부들의 이야기가 울긋불긋 꽃피어 있고 시름겹게 누웠던 이야기도 담담히 담겨있다.

수필은 자기 자신과의 만남이요, 오래전에 돌아가신 부모님과 밤새 만나 두런두런 이야기하다 끝내 눈물을 떨어뜨리기도 하는 소통의 창이다. 수필을 쓴다는 건 마음의 빗장열기이다. 마음의 문을 열기가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온 몸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일이다. 특히 외국에서 우리나라를 찾아든 여인들이 한국의 주부들과 어울려 글을 써 낸다는 것은 더욱 그러하다. 서로 다른 문화의 습속에서 온전히 자신을 표현하기는 참으로 어려운 작업이다. 그러나 주춤주춤 용기를 냈다. 꿈과 포부를 안고 국경을 넘은 그녀들은 분명 용기 있는 여인이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긁히고 베인 상흔 또한 적지 않았으리. 상처에 딱지 앉듯 여린 마음이 옹이로 굳어져 어쩌면 내 안에 보호막을 한 겹 더 두르고 지냈는지도 모른다.

이제, 이들이 세상 밖으로 커다란 눈망울을 깜박이며 도란도란 속내를 풀어냈다. 낯선 나라 다른 풍습 앞에서 어찌할 바 몰라 어리둥절한 채, 무표정한 눈망울을 떼구르르 굴리고 있는 모습이 때로는 시댁 가족에게 오해를 불러온다. 또 때로는 의사소통이 제대로 안 되는 상태에서 문화적 차이 때문에 불화를 초래하기도 한다. 다섯 살짜리, 세 살짜리 아이를 키우는 20대 베트남 출신 여인은, 한국의 젊은 엄마들이 아이 키우는 것을 인큐호박 키우듯 한다고 표현했다. 아이를 위한다는 이유로 엄마가 정하고 만들어 놓은 틀 안에 가두어 놓고 아이의 발달을 정체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내심 그 말에 찔끔했다. 예리한 지적이다. 나이 어린 엄마도 보는 것은 잘난척하는 한국의 엄마들만이 모른다. 제 꾀에 제가 빠지는 꼴이다.

서로 다른 문화가 글 속에 녹아 있다. 이름도 성도 아닌 것이, 이름 앞에 떡 버티고 있는 다문화! 이로 인해 아이가 차별 받을까 우려하는 마음이 역력하다. 이들은 우리의 2세를 낳고 키우는 한국의 며느리요, 어머니이다. 당당히 이 땅에 뿌리를 내리고 보람찬 삶을 살 수 있도록 손을 맞잡아 주어야 한다. 한국어와 본국어가 병행된 수필집! 속내 풀어 송이송이 꽃을 피워낸 정성이 곱다. 글꽃 향기가 온 세상에 널리 번져가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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