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복회 청주시 오근장동장

[김복회 청주시 오근장동장] 어릴 적 필자가 다닌 초등학교는 학생이 한 학년에 한 반뿐이어서 6년 내내 함께 공부했다. 지금은 그마저도 사라지고 그 자리에 펜션이 자리 잡고 있다. 6년을 함께했던 친구들이 제주도로 회갑여행을 다녀왔다. 오랜만에 만난만큼 수많은 이야기를 나누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우린 버스로 이동하는 시간을 유익하게 활용하기로 하고, 우선 학교 다닐 때의 소중한 추억담을 하나씩을 풀어 놓았다. 한 명 한 명 마음속에 간직했던 기억들을 꺼내 놓자, 친구들과 싸웠던 이야기, 선생님께 혼난 이야기 등 기억 저편에 있던 많은 이야기가 쏟아져 나왔다. 그 중 한 친구가 오래 숨겨두었던 말이라며 꺼냈다. 풀베기 작업을 한다고 해 낫을 가지고 갔다가 친구랑 장난을 치다가 그만 손가락을 다쳐 지금도 겨울만 되면 손이 시리고 아프단다. 다치게 했던 친구도 그 일이 생각난다며 그 아픔을 생각 못하고 살았다며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다.

이런 진솔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만큼 우린 익어가고 있나 보다. 우리는 함께 졸업했던 모든 친구들의 이름을 하나씩 부르며“사랑한다.”라고 외쳐 보기로 했다. 참석 못한 친구와 하늘나라에 먼저 간 친구들까지 하나하나 이름을 호명하며 큰소리로“사랑한다”고 소리쳐서 불렀다. 평소 느끼지 못했던 뭉클한 감정이 솟았다. 오십 여명의 정겨운 친구들 이름을 마을별로 돌아가며 부르고 나니 함께 있는 친구가 더없이 소중하게 다가 왔다. 먼저 간 친구의 이름을 부를 때의 먹먹함이 한동안 가시지 않는다. 많은 아쉬움과 의미 있는 여행을 마치고 우린 다음 여행을 계획하며 헤어졌다.

필자는 이런 친구들에게 추억의 앨범을 만들어 주고자 여행 시작 전부터 맘속으로 준비하고 사진을 찍었다. 찍은 사진들을 살펴보며 앨범을 어떤 식으로 편집, 제작할까 고민 끝에 친구들 각자에게 맞춤형 앨범을 만들어 주기로 했다. 시간이 좀 더 걸리고 많이 피곤하겠지만 소중한 친구들이기에 더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친구 하나 하나를 생각하며 잘 나온 사진, 기억에 남을 사진을 골라 모양을 내고 글을 쓰는 손길이 바쁘다. 모든 작업이 끝나고 주문을 하고 나니 뿌듯한 기쁨이 밀려온다. 며칠 후 단톡방에서 친구들이 와글와글 시끄럽다. 너무 예쁘다고, 고생했다고, 잘 간직하겠다고, 아우성들이다. 누군가를 위하여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것은 이렇게 감사하고 또 행복한 일이다.

필자가 나온 초등학교는 졸업 앨범이 없었다. 졸업 앨범을 대신해서 학교 교무실 앞 계단에서 선생님들과 같이 찍은 흑백사진 한 장이 전부였다. 촌스럽고 무표정한 사진이지만 그마저도 지금 가지고 있는 친구들이 몇 안 된다. 졸업할 때 만들지 못한 앨범을 회갑나이에 만든 셈이다. 때늦은 앨범이지만 빛바랜 흑백이 아닌 화려한 칼라 속에서 제 나이답게 곱게 익어간 친구들의 모습이 참 보기 좋다. 방금 제작한 앨범 속 친구와 졸업식 날 교무실 앞 계단에서 무표정하게 찍었던 빛바랜 사진 속 우리의 모습을 보니 새삼 세월을 가늠하며 혼자 소리 없이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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