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성혜 한국교원대 교수

[백성혜 한국교원대 교수] 2019학년도 수능 국어 31번은 아무도 기대하지 못했던 문제였다. 일부 전문가들은 이 문제가 국어가 아닌 물리 문제라고 주장했고, 출제한 전문가들은 사과했다. 하지만 나는 이 문제가 학생들의 사고의 깊이를 알아보는 매우 멋진 문제라고 생각한다. 21세기에는 국어, 과학과 같은 영역 구분은 무의미하며, 과학적 사고를 글을 통해 이해할 수 없다면 과학자도 국어학자도 될 수가 없다. 언어는 사고의 가장 중요한 수단인데, 언어로 이해되지 않는다면 어떤 사고의 발달이 가능할까? 이번 수능 문제는 그러한 사고 능력을 물어본 문제였다.

이 문제는 국어도 과학도 아닌 철학에 가까운 문제이다. 뉴턴은 지문과 유사한 사고 논리를 통해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지만 적분의 개념에 도달하였다. 그리고 자신의 사고 논리로 천체의 운동을 설명하는데 성공하였다. 이후 그는 "자연철학자"로 자신을 정의했다. 사실 고등학교에서 적분을 배우는 학생들은 뉴턴의 사고과정을 통해 적분 공식을 이해해야 한다. 무조건 공식만 외우고 문제만 풀면, 의미를 모르기 때문에 기계가 문제를 푸는 것과 같다.

이제는 인공지능 시대이다. 인공지능에게 적분공식을 입력하면, 아무리 어려운 문제도 척척 푼다. 그러나 인공지능은 스스로 수능 국어 31번 지문에 소개된 뉴턴의 사고과정을 통해 적분 개념을 만들지는 못한다. 그래서 인간은 인공지능과 다르다. 우리가 미래 인재를 인공지능이 더 잘 하는 일과 경쟁하도록 만들지 않으려면, 수능 문제가 이런 방식으로 바뀌어야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수능에 대한 기대가 엄청나다. 수능 치르는 날이 되면 출근시간도 연기하고, 비행기도 뜨지 않으며 시험의 최적 조건을 만들어 주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많은 수험생들을 당황하게 했던 사건은 자동차가 막혀서 지각한 것도, 비행기가 시끄럽게 해서 들리지 않았던 것도 아니고, 문제가 너무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그럼 어려운 문제는 수능에서 내면 안 되는가?

지금까지 수험생들이 준비한 수능은 인공지능이 더 잘 할 수 있는 단순 암기 문제가 대부분이었다. 이런 문제를 내는 이유는 "사교육을 억제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나는 문제 출제자들이 뉴턴과 같은 깊이 있는 철학적 사고를 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누구나 풀 수 있는 쉬운 문제를 내고, 학생들이 사고의 수준과 상관없이 모두 만점을 맞는다면 그 시험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시험을 잘 보기 위해 우리는 미신과 같은 행동도 망설이지 않고 한다. 시험 날 미역국을 먹지 않거나 가려워도 머리를 감지 않는 것 같은 행동 말이다. 하지만 그보다 현명한 행동은 자신의 실력을 쌓는 것이다. 실력이란, 쉬운 문제를 실수하지 않도록 반복하는 것보다 사고의 깊이를 가지는 것이어야 한다. 수능 문제가 이렇게 변한다면, 우리나라 학생들의 공부 방식도 달라질 것이고, 비로소 인재들이 길러지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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