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으로 아름다운 사람

"세월은 유수가 아니라 달아나는 화살이라고 했던가."
수줍은 듯 돌아서 몽우리를 잉태 하던 목련이 드디어 땅에 떨어져 뒹구는가 싶더니 어느새 무심천변의 벚꽃이 만개 했음에 화들짝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퇴근길에 포도를 질주하는 차량들, 굉음 그리고 휘황찬란한 네온사인의 불빛이 아귀다툼을 하듯 판을 치고 있음에도 아랑곳 없이 밤에 보는 벗꽃은 달빛을 우러러 호소하듯 눈이 아리도록 깨끗하다. 마치 절망속에서 깨달음을 주듯 앞길을 훤히 터주는 희망의 불빛 같았다.

"웃는 돼지머리는 보기도 좋다"라는 말이 있듯이 벚꽃이 환함이 있는 그대로의 순수함이라서 더욱 좋은 것 아닐까.
사람은 태어나서 엄마의 젖을 먹고 자라듯, 꽃이라는 것도 생명이 있어 뿌리로부터 수액을 빨아들이고 사는 것인데 꽃집에서 여린 살갗에 칼을 대고 사오지 않고도 꽃의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으니 이 얼마나 큰 행복일까.

출근길에 무심천 하상도로를 질주할때마다 저만치의 측정거리에서 아침이슬을 머금고 바람에 흔들리는 벚꽃의 독특한 향기에 취해 몸살이라도 날것 같다. 여인의 속살처럼 뽀얗고 무성한 어우러짐이 산에서 잡초와 벌레와 더불어 피는 들꽃들보다도 더 겸손으로 다가온다.

꽃은 그 자체의 아름다움과 계절에 거역함이 없이 찾아오는 기다림이 아름답다. 그 속에서 창작을 낳고 인간에게 경이로움을 주고 있다. 꽃만이 아닐 것이다. 사람도 '저만치 혼자서'있는 사람이 아름다운 것이 아닐까.

식물은 자리바꿈에 계절과 시기가 있는 것이고, 사람의 자리바꿈도 시기와 때가 있는 것이다. 요즈음 우리 사회는 출세해서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이 존경받고 영원한 추앙을 받는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저만치 혼자서'궂은 일을 하면서 묵묵히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지역일꾼은 지역민을 위해서 존재하는 일꾼이다, 자신을 뽐내는 사람보다 저만치 혼자서 자신을 자랑하지 않고 남을 아름답게 꾸미는 자리에 묵묵히 서있는 사람이 진정한 일꾼이 아닐까.

내 생활에도 명암이 교차 하듯 벚꽃이 만개하기까지는 세파에 시달려 피눈물을 흘리며 상처도 많이 받았으리라 생각하니 자신의 희노애락을 묵묵히 끌어 안고 피어 있는 자태를 보며 우리가 얼마나 참을성 없고 가벼운 존재인가를 통감 한다. 빛살처럼 환한 벚꽃을 보고 있으면 세상이 이대로 멈추어도 좋을 듯 싶다. 머리에 인 물동이 출렁거리며 얼굴로 흘러 내리듯 가슴은 찬탄으로 떨리고 벚꽃의 영혼이 내 몸으로 쏟아지는 것만 같다.

얼마쯤이면 시간의 흐름에 따라 그가 소유했던 것들이 하나 둘 바람에 날려 거리에 흩날릴때면 우리는 그 아름다움에 대한 경탄만큼이나 또 마음이 아파 몸살을 앓을 것이다. 그때도 우리는 어쩌지 못하고 지켜볼 일이다. 어느 누구도 가는 세월을 잡고 시비할수도 없거니와 아무래도 삶이란 쉬어갈수 없는 고달픈 여로이기에.

그러나 하향선을 긋는 우리의 인생을 반추하고 삶의 의미를 다시 헤아려 귀하디 귀한 시간을 더 아껴 값지게 살아 가는게 어떠랴!

▲ 김정렬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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