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표 서원대 교수

[이광표 서원대 교수] 잡지 기사나 신문 기사를 보면 종종 '서울에 사는 회사원 김모 씨(40, 여)는…'이라는 표현이 나온다. 그런데 '서울에 사는 회사원 박모 씨(40, 남)는…'이라는 표현은 찾아볼 수 없다. 그냥 '서울에 사는 회사원 박모 씨(40)…'이라고 표현한다. 두 표현의 차이는 무엇일까. 김모 씨는 여성이고 박모 씨는 남성이라는 점. 남자 이름을 쓸 때는 '남'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으면서 여자 이름을 쓸 때는 '여'라는 단어를 쓰는 것이다. 여자 이름을 쓸 때 굳이 '여'라는 단어를 넣어 이 사람이 여성이라는 사실을 부각시키려는 이유는 무얼까.

우리 주변을 보면 ○○여자중학교, ○○여자고등학교가 적지 않다. 여학생만 다니는 학교라는 사실, 누구나 다 안다. 그런데 남학생이 다니는 학교는 ○○남자중학교, ○○남자고등학교라고 하지 않는다. 그냥 ○○중학교, ○○고등학교라고 한다. 여학생만 다니는 학교를 유독 ○○여중, ○○여고라 한다. 대학도 마찬가지다. 이를 두고 누군가는 "그저 관행일 뿐"이라고 말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여성을 남성과 분리시켜, 여성이라는 점을 부각시키는 관행은 엄밀히 말해 가부장제의 산물이고 우리 일상에 숨어 있는 차별적인 언어 사용이 아닐 수  없다.

미디어아트라는 미술 용어가 있다. 미디어아트라고 하면 대체로 최신 첨단 미디어와 기술을 활용한 미술을 가리킨다. TV 모니터를 활용한 백남준의 비디오 아트나 디지털 테크놀로지와 영상을 활용한 예술 등을 미디어아트로 받아들인다. 반면, 그림이나 조각을 미디어아트라고 하지는 않는다. 우리는 이렇게 전통적인 장르의 미술과는 거리가 먼, 즉 회화나 조각이 아닌 최신 예술을 미디어아트로 받아들인다.

그런데 '미디어'와 '아트'라는 용어의 결합이 좀 이상하다. 미디어는 메시지 전달의 수단과 방법을 지닌 모든 매체를 일컫는다. 그림이나 조각과 같은 장르도 애초부터 그 자체로 미디어다. 그런데도 우리는 회화나 조각을 미디어아트에서 제외하거나 미디어아트와 대립하는 것으로 받아들인다. 엄밀히 말해 미디어아트라는 용어는 의미의 충돌이자 모순이다. 우리가 '미디어아트는 첨단 기술을 활용한 예술'로 인식하고 그 뜻을 관행적으로 받아들이고 있기에 미디어아트라는 용어를 사용해도 별 문제는 없어 보인다. 하지만 엄격히 말하면 모순된 언어 사용이다.

요즘 사회적 기업이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흔히 '사회적 약자인 취약계층에게 일자리나 사회서비스를 제공하는 등 사회적 목적을 추구하며 이를 위해 수익을 창출하는 영리·비영리 조직'이라고 설명한다. 이 경우도 '사회적'이라는 단어와 '기업'이라는 단어의 결합이 좀 어색하다. 사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에 인간이 관여하는 기업은 애초부터 사회적이지 않을 수 없다. 다시 말해 기업은 모두가 사회적이다. 그런데 우리는 사회적 기업을 기업과 분리시킨다. 이 또한 모순된 용어다. 명칭은 차별이 없어야 하고 객관적 합리적이어야 한다. 불편이 없다해서 무심히 지나칠 일은 아니다. 그것이 인식을 지배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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