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종환 한국자산관리공사 대외협력위원

[황종환 한국자산관리공사 대외협력위원] 요즘 주변 사람들에게 연말연시의 감정이나 기분을 물어보면 별다른 감흥이 없다고 한다. 한해를 보내거나 새해를 맞이하는 일에 좀처럼 관심을 갖거나 들뜬 기분을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 각종 경기지표가 좀 나아지고 있다는 발표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체감경기가 나빠져서 살아가기가 더욱 힘들다고 아우성치고 있다. 정말 세상 돌아가는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생각이 혼자만의 느낌이 아니다. 테헤란로를 따라 휘황찬란하게 장식된 크리스마스트리가 화려한 불빛을 반짝이지만 인적 드문 한산한 거리는 썰렁하고 지나가는 행인들의 얼굴은 무표정하다. 어릴 적 지금보다 훨씬 가난했던 때보다 덜 민주적이었던 때보다 활기가 없는 회색빛 도시를 휘감는 차가운 바람이 온몸을 더욱 움츠러들게 한다.

며칠 전 집 근처 골목길을 걸어가는 노부부의 모습에서 가슴 한쪽이 아릿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허리가 굽어 꾸부정한 할머니의 몇 발짝 뒤에서 묵묵히 따라가는 할아버지를 처음에는 이해하지 못했었다. 한참 지나서 앞서가는 할머니를 뒤에서 걱정스럽게 지켜보며 한발 한발 보조를 맞추면서 걸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서너 발짝 떨어져 걱정스럽게 따라가는 일이 할아버지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랑의 표현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에 순간 묘한 감정에 빠져들었다. 앞장서서 손목을 잡아 끌어주는 사랑도 있지만 뒤에서 다소곳이 지켜보며 따라가는 애틋한 사랑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한다. 한 발짝 뒤에서 보조를 맞추며 함께 걸어가는 것이 진정한 사랑의 모습은 아닐까 싶다.

최근 갑작스런 암 진단 선고를 받아 수술하고 항암치료 중인 친구한테 전화가 왔다. 자신이 쓴 글에 한 친구가 암으로 아프더니 이제 철이 들었다는 댓글에 상처를 받았다고 한다. 그 친구는 위로한다는 뜻에서 농담으로 편하게 쓴 글이겠지만 정작 당사자는 상처를 받았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이 순수하고 주변을 배려하는 사람일수록 남의 말에 상처를 쉽게 받는다고 한다. 특별한 의도가 없는 인사치레의 말이라고 적당히 흘려들으면 어떨까? 가끔 외모라든지 열등감을 갖게 하는 말이나 낯간지러운 말을 그냥 웃어넘기는 것이 편할 때가 있다.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오히려 문제가 될 수 있기 때문에 타인의 말에 크게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다. 상대의 악의나 무시하는 감정이 없을 것 같은 사소한 말이나 행동을 지나치게 의식하면 결국 자신이 상처를 받는다.

모든 문제나 불행은 타인과의 비교에서 시작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남과 비교하며 살아간다. 남과 비교하는 것이 지나쳐도 문제지만 반대로 남을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것도 문제일 수 있다. 남이 가진 것을 똑 같이 가지고 싶은 욕망이 있겠지만 그렇다고 모든 것을 가질 수는 없는 일이다. 결국 자신의 뜻대로 이루지 못했을 때 열등감으로 인한 자신감 상실이 문제다. 적당한 균형감을 가지기는 쉽지 않지만 타인과의 비교는 자신감 상실에 이르지 않도록 하는 편이 낫다. 먼저 자신이 잘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는 습관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삶의 가치관이 완전히 일치하는 사람은 없다. 사람에 따라 멋이나 아름다움의 기준이 다르듯 가치관은 상당히 다를 수밖에 없다. 유연한 사고와 발상으로 소통한다고 해도 자연스럽게 어긋날 수밖에 없는 것이 생각차이다. 스스로 틀에 박힌 사고에서 벗어나 다름과 차이를 인정하는 지혜가 바람직하다.

종종 생각하지도 못한 방향에서 불어오는 거센 바람에 휩쓸려 자신도 모르는 사이 낯선 곳으로 떠밀려가고 있다는 사실을 한참 지난 후 느끼는 경우가 있다.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이라는 제목의 시가 생각난다. 적기에 과거와 현재를 돌아볼 수 있다면 절망의 나락에 빠졌을지라도 다시 용기를 얻을 수 있다. 이제 낡은 감성으로부터 긴장해야 하는 시간이다. 가장 중요한 때는 지금 이 시간이며, 가장 중요한 일은 지금하고 있는 일이며, 가장 중요한 사람은 지금 만나는 사람이다. 그래서 가장 중요한 순간 지금 잘 살아야 한다. 자신의 인생을 사랑하는 것으로부터 진정한 아름다움이 나온다.

세상은 돌고 돈다. 가장 좋은 일도 가장 나쁜 일도 결국 돌고 돌아온다. 모든 꽃이 붉은 장미일 필요가 없듯 모든 사람이 장미처럼 화려할 필요는 없다. 오직 자신만의 색깔과 향기와 모양에 맞는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편이 좋다. 행복을 추구하려면 희생과 배려가 필요하다. 상대를 보살펴주고 이끌어주며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는 것이 곧 사랑이다. 삶의 어려움에 직면한 사람들을 돌아보며 앞서서 끌어주고 뒤에서 보조를 맞춰 따라가는 따뜻한 사랑을 실천할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하는 아침이다. 이제 기해년(己亥年) 황금돼지해의 새날이 다시 밝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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